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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건국절 논쟁의 소모성을 경계한다


[홍진표 | 본지 편집인]

1. 건국절 논의의 전개

 

건국절 논의란 1948815일을 건국절(편의상 이하 ‘8·15 건국절’)로 정하자는 제안과 그 반론들을 말한다. 건국절 논의는 20067월 이영훈 교수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동아일보 칼럼에서 시작된다. 20079월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8·15 건국절 법안을 발의했다가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2008년 결국 철회하면서 논쟁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2014815건국절제정국민운동발기인대회가 열리는 등 민간차원에서 다시 건국절 제정운동이 벌어졌다. 2014125일에는 이에 반대하여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 천도교 등 단군신봉세력, 일부 진보단체들이 연대하여 건국절법률제정철회국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2016815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건국68주년을 언급하면서 논쟁이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역대 대통령들도 비슷한 언급을 해온 만큼 박 대통령의 발언 자체는 8·15 건국절 제정론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후 새누리당에서 8·15 건국절 제정에 관심을 보이고 법안이 발의(이미 2014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 60여 명이 8·15 건국절 입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되면서 논쟁이 격화되었다.

 

8·15 건국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1948815일에 건국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건국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족의 통일 염원에도 불구하고 강행된 남한만의 단독정부의 수립이라는 불행한 사건으로 치부라는 이영훈 교수의 2006년 칼럼의 일부에 잘 나타나 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 대한민국 건국이 역사의 역행인 것처럼 보는 시각이 표면화된 것은 사실이다. 이미 80년 중반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된 주사파는 북한 중심의 역사관을 받아들였고, 97년 정권교체를 계기로 이런 주장들이 수면위로 나오게 된 것이다. 북한중심의 역사인식과 전통적인 민족주의 사관의 기묘한 공조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8·15를 건국절로 정하면 대한민국의 건국이 부당하게 폄하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일제로부터 독립한 1945815일을 국경일1인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다. 이는 완전한 우연은 아니고 1948년에 건국일을 택할 때 광복절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19485·10 제헌의회선거, 7·17 헌법공포, 7·20 대통령 선거를 거쳐 이미 만들어졌고, 1948815일은 건국을 선포하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8·15가 광복절로만 기억되면서 1948년 건국 사실이 묻히는 현상에 주목한다. 결국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바꾸자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2. 건국절은 없는가?

 

8·15 건국절 주장은 우리는 건국절이 없다는 전제하에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건국절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103일 개천절이 건국절로 정해져 있다. 신화에 근거한 것이라 그 의미는 강력하지 않지만, 여하튼 ‘The National foundation Day of Korea’라는 개천절의 영문표기만 보아도 건국절임이 명백하다.

 

개천절은 민간에서 단군을 기리는 행사에서 시작되다가 1919년 상해임정에서 공식 국경일로 정하게 된다. 이때 상해임정은 개천절이 아닌 건국기원절로 명명했으니 이날을 건국절로 삼은 것이 분명하다. 이 전통은 건국 이후에도 수용되어 이승만 정부에 의해 1949년부터 개천절을 양력으로 고정하여 국경일로 삼게 된다. 단순히 개천절을 건국일로 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19489월 단기연호(서력기원+2333)도 도입하였다. 단기연호는 5·16 이후 1961년 박정희 군사정부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10년 이상 썼다.

 

이승만 정부가 개천절을 건국일로 정하고 단기연호를 쓴 건 다분히 일본을 의식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정치적 행동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8724일 취임선서에서 19193·1운동을 기점으로 하는 대한민국 30(민국 연호)’를 넣어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단기연호는 제헌헌법 전문(‘단기 4281712일 이 헌법을 제정’)에도 언급되어 이미 정론화 된 상황이었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은 단기연호를 마음속으로 완전히 수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하지만, 여하튼 개천절과 단기연호는 이승만 정부에서 법제화되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직후인 당시 일본보다 더 오래된 국가의 기원을 찾으려는 정서는 무척 당연해 보인다. 일본은 역사서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근거 진무천황이 즉위한 기원전 660년 음력 11일을 양력으로 계산한 211일을 건국일로 정하고 있다. 1872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 정해진 건국일은 1948년 폐지되었다가 1966년 다시 부활하여 국경일로 정해졌다.

 

우리헌법에는 대한민국이 고조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제헌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이라며 대한민국이 오래된 기원을 갖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단기연호를 적용하였다. 이중 유구한 역사라는 문구는 현재의 제10호 헌법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헌법전문의 유구한 역사가 개천절을 건국절로 정한 법과 상통한다고 해석하더라도 개천절은 건국절로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은 가능하다. 이런 차원의 논의가 설사 헌법 밖의 논의라 하더라도, 민주사회에서 토론 금지가 될 만한 주제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멀리 찾아가더라도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건 이상하다고 볼 수도 있다. 국민들이 개천절을 실제의 건국절로 실감하지못하는 점을 문제시할 수도 있다. 여하튼 개천절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별개로 8·15 건국절을 제정하려면 개천절을 폐기하거나 적어도 건국절의 의미를 완전히 제거해야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법적으로 건국절이 두 개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건국절은 정치문제

 

이미 개천절이 건국절로 존재한다는 대목을 빼고도 8·15 건국절 주장이 갖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국가의 건국절 선택은 그 성격상 역사적 접근 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이다. 건국절 선택이 정치적 행동이라는 의미는 엄밀한 역사적 사실보다는 국민적 합의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적 실체가 실제로 등장한 건국한 날과 건국절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때로는 정서적인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가 개천절을 건국절로 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차대전 후의 완전한 신생독립국을 제외한 타국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8·15 건국절 주장처럼 첫째, ‘Foundation Day’라고 부르는 명시적인 건국절을 두고 둘째, 근대국가를 기점으로 실제 건국일을 건국절로 정한 나라는 오히려 드물다. 19231029일 케말 파샤가 주도한 공화국 건국일을 국경일로 정한 터키가 이에 부합한다. 인도는 그 이전의 오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1950126(독립은 1947815)을 사실상 건국절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은 공화국 헌법발표일로 우리의 제헌절과 같다. 러시아는 아예 구소련은 물론 그 이전 역사와도 구분하여 구소련 해체 이후 1990612일 러시아 의회가 정식으로 주권국으로 선언한 날을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로 기념하고 있다.

 

미국은 74일을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로 정하였는데, 독립과 건국이 일치되는 만큼 그날이 건국절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독립기념일도 독립전쟁 승리(1783) 후 실제 독립(또는 건국)일이 아니라 1776년 독립선언일을 기념하고 있다. 프랑스는 근대국가 프랑스 탄생의 기원으로 실제 공화정이 시작된 1792년이 아닌 1789년의 혁명을 기리는 714일을 혁명기념일’(Bastille Day)로 정하고 있다. 독일은 1990103일 독일 통일의 날(The Day of German Unity)을 국경일로 정하고 있으며, 영국, 스페인 등은 건국절 자체가 없다. 이탈리아는 한국, 일본과 비슷하게 BC 753421일 로마의 건국을 기념(Birth of Rome Celebrations)한다.

 

이처럼 건국절이 따로 없는 경우도 적지 않고, 있더라도 건국 날짜와 일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헌법제정일, 독립기념일(선언일과 실제 독립일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통일의 날 등을 건국절과 유사하게 기념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처럼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을 별도로 다 국경일로 정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신생국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대한민국 자체의 건국을 기념하는 날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광복절은 대한민국 성립을 가능하게 한 계기였으며, 제헌절은 근대입헌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을 직접 기념하는 날이다. 3·1절도 거족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이니 건국 단초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런 날들 중 대체로 하나를 택해 기념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이미 대한민국 자체의 건국을 기념하는 날들을 충분히 갖고 있다. ‘건국절이라는 명칭을 꼭 써야 하고, 건국의 여러 단계 중 헌법제정일 같은 것은 절대 안되며, 건국선포 또는 기념일만 건국절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합리적이라고 평할 수 없다.

 

둘째, 건국절 논의가 정치적이라는 연장선에서 8·15 건국절 주장이 전제하는 역사관은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는 난점이 있다. 8·15 건국절은 대한민국이 그날 탄생했다는 사실만으로 결코 주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다음의 특정한 역사관점을 담고 있다. 1)대한민국은 신생국이다. 즉 대한민국은 그 이전 대한제국, 조선을 계승한 것이 아니며 단절된 존재이다. 2)일제식민지 하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단초가 될 만한 국가적 실체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1948815일 탄생하였지만, 그 이전의 국가를 계승한 것이라면 건국절은 당연히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대한민국이 조선의 연장선이라면 당연히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선이 고려와, 고려가 통일신라와 왕조 교체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특별히 차별화된 존재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등장을 그 이전 국가의 계승의 관점에서 본다면 새로운 국가의 건국이 아닌 국호의 변경으로만 볼 수 있고 그렇다면 8·15 건국절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게 된다.

 

역시 역사연구 차원에서는 대한민국이 신생국이라는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상당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이후 미군정 등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제도, 의식,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조선과 단절된 측면이 더 강했다. 물론 대한민국이 국가적 실체조차 갖지 못한 채 식민지배에 놓였다가 독립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국들과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비록 전근대국가이지만 오랜 기간의 중앙집권적인 국가의 경험을 가졌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신생독립국들과 차이가 있다.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조선을 계승하였고, 그 이전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 한 것에 대해 국민 다수는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가 침략 당해 주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역사연구에서는 대한민국이 조선과 단절된 새로운 실체라고 불 수 있으며, 전근대국가는 근대적 국민국가가 아닌만큼 대한민국을 진정한 의미의 국가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관을 국민적 합의가 절대적인 건국절 제정에 즉각 적용하려는 건 건국절의 보편적 성격에 맞지 않으며 동의를 받기도 어렵다.

 

한편 대한민국의 신생국 주장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식민지배의 합법성 논쟁에 빠져들게 된다.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소멸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대한제국을 계승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게 된다는 반론이 있다. 제국주의시대의 식민지배는 본질적으로 무력에 기반한 강제적인 것으로 조약의 형식을 갖추었다고 해서 정당화 될 리가 없다. 따라서 식민지배를 정당화 한다는 식의 논쟁은 극히 소모적이다. 그러나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에서는 이런 대목을 때로는 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에서는 사회주의 이전의 국가들은 다 지배계급을 위한 폭력기구에 불과하고 인민은 주권을 갖지 못한 피지배계급일 뿐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는 그 이전 역사와 분리하는 것이 당연하며, 실제로 사유재산제와 신분제의 폐지, 전근대문화의 일소 등을 통해 급격한 역사적 단절이 발생한다. 예컨대 중국은 유일한 국경일로 1949101일을 건국절(National Day)로 기념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사관의 통일성에 기초해 사회주의 국가의 성립을 중심으로 건국절을 정할 수 있으나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쉽지 않다.

 

과학을 중시한다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중국 공산당조차도 언제부터인가 중국의 기원을 삼황오제시대로 끌어올리는 데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나름의 역사기록이 있는 요순시대는 물음표로 남겨놓더라도 그 이전시대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황제의 거대한 동상을 세우기도 하였다.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이념이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중국식 민족주의라 부를 수 있는 중화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정치의 영역에서는 공동체의 정서적 일체성을 얻기 위해서라면 역사적 사실이 일부 무시되는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국가운영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터키나 인도가 오래된 기원을 찾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근대국가의 시작을 기념하게 된 배경은 잘 모르겠다. 이런 사례를 보면 우리도 그 이전 역사와 분리시켜 근대국가 대한민국의 건국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국민적 합의이다. 특히 우리는 1948년에 일본이나 이탈리아처럼 건국의 뿌리를 고대국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선택을 이미 해 버렸다.

 

셋째, 설사 대한민국이 신생국이라는 광범위한 합의가 되더라도 건국절 합의가 원만하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대한민국의 직접적 기원을 1919년으로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1919년 기원설도 3·1운동 중시설과 임시정부 중시설로 나뉜다. 실증주의적 역사연구에서는 임시정부는 독립운동단체 중의 하나였고 특히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연장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우선 1987년 헌법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전문에 명문화했다. 나중에 헌법개정 시 이 내용을 뺀다고 가정해도 논란이 종결 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미국과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실제의 건국날짜가 아닌 독립선언을 한 날짜나 혁명이 발발한 날을 기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3·1운동이나 임시정부가 국가의 실체와는 무관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역사학의 주제이며, 건국절 제정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8·15 건국절 주창자들이 임시정부가 국가의 핵심요소인 주권, 영토를 결여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틀리지는 않으나 건국절 논의에서는 그게 왜 문제가 되냐라는 반론이 나오게 되어 있다.

 

20158월 리얼미터의 건국시점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의 결과는 현재의 국민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건국시점에 대해 63.9%의 국민들이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고 응답했고 반면 1948년이라는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이 질문이 역사시험문제라면 역사지식의 부족을 탓해야겠지만, 건국절 여론조사에서는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4. 건국절 논쟁은 무익하다

 

10여 년 전 건국절 논쟁이 시작되자 백가쟁명의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천절의 건국절 의미를 강화하자는 주장,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영토, 구성원 등에서 현재의 원형이 갖추어진 통일신라를 건국기원으로 삼자는 주장, 앞서 다룬 1919년을 기점으로 삼자는 주장, 건국절 제정은 통일 이후에 하자는 주장 등이다. 대체로 대한민국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덜어졌다고 주장하는 건 논리 이전에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분위기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승만 정부 초기에 개천절을 건국절로 정하면서 건국절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면 몇 가지 공유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첫째, 대한민국의 뿌리를 신화에 가까운 단군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적절하지 않다. 이를 합의하지 않으면 현재의 논의는 없는 건국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꾸는 것이라서 논의가 더 나갈 수가 없다. 둘째, 대한민국을 신생국으로 볼 것인가 여부를 정해야 한다. 신생국으로 보지 않는다면 그 기원을 어디에 둘지 합의해야 한다. 셋째, 대한민국을 신생국으로 본다면 역시 1919년과 1948년 중 어디로 할지 택해야 한다. 소수가 모여 합의가 될 때까지 끝장토론을 한다고 해도 과연 가능할지 의심스러우며, 국민적 차원에서 합의를 이끌기는 너무 복잡한 주제이다. 이 어려운 주제에 대해 왜 지금 결론을 내야만 하는지 그 절실한 필요성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어렵다.

 

8·15건국절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개탄하는 대한민국 건국이 폄하된다는 풍조는 장기간의 토론과 설득을 통해 풀어나갈 문제이다. 오히려 건국절 제정과 같이 국가가 위로부터 강제하는 방식은 반발만 키울 뿐이다. 매우 완고하면서 이해관계까지 얽혀있는 여러 주장들이 쏟아져 나온 건국절 논쟁과정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8·15 건국절은 민간에서는 비교적 순수하게 정치적 계산 없이 주장할 수 있지만, 현실정치의 주류정당인 새누리당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건국절 논쟁은 좌우의 이념구도와 거의 무관한 매우 복잡한 주제라서 우파 내에서도 8·15 건국절에 대한 반대의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의 건국시점으로 인식하는 응답이 절대 다수의 분포를 보였는데, 보수층에서도 65.1% vs 22.7% 순으로 나타났다.

 

건국절 논의에는 일반적인 민족주의적 국민정서가 반영되는데, 우리사회는 좌우를 불문하고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8·15 건국절 주장은 정치적 이익 면에서 보자면 전통지지층조차도 반대가 많으니 좀 어리석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더구나 국회의원 등 공직자는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다는 헌법 정신 준수라는 측면에서 민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는다고 볼 때 신중할 의무도 있다.

 

5. 건국절과 통일의 연관성

 

건국절의 변경문제는 통일과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1948815일에 건국되었지만, 분단으로 인해 여전히 미완성(비정상이라는 뜻은 아니다)인 상태이다. 우리는 헌법상의 대한민국(남북한을 포괄하는)과 남한이라는 현실국가라는 이중적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 상 국민인 북한주민 2500만을 이 논의에서 배제시킬 정당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

 

만약 통일 이후 남북한이 모두 참여하여 건국절 논의를 하게 되면, 통일독일처럼 통일국가의 출범일을 건국절에 준하는 기념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분단이 고착화되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는 건국절 문제는 다른 접근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현재는 남북한이 모두 통일지향을 내걸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통일반대나 무관심층이 다수가 되면 두 개의 국가로 굳어질 수도 있다. 통일이 실현되었다가도 말레이 연방이나 예멘처럼 재분단이 될 수도 있다. 통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2개의 국가로 고착되면 그때는 현재의 남한이라는 국가의 기원에 대한 논의가 제기될 수 있다. 모든 것이 가정에 근거한 것이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때는 남한에 국한한 대한민국을 이전 역사와 분리해서 보자는 주장이 좀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19488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사실의 언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건국절 논란이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고위 공직자가 공적인 자리에서는 정부수립일정도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좀 더 나아가 19488·15를 건국절로 정하자는 민간차원의 주장, 그 반대론의 제기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정부차원에서 이를 관철시키려는 입법 추진 등의 행동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상황이 되면 찬반양론의 격렬한 투쟁을 피할 수 없다. 이미 많은 사회갈등요소의 피로증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사회에 또 하나의 소모적인 갈등을 추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차원에서 이를 관철시키려는 입법 추진 등의 행동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상황이 되면 찬반양론의 격렬한 투쟁을 피할 수 없다. 이미 많은 사회갈등요소의 피로증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회에 또 하나의 소모적인 갈등을 추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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