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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진단] 북한 핵무장 위기본질과 한국의 전략선택


[이준구 | 예비역 육군 중장]

1. 서 론


한국은 북한 5차 핵실험으로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안보위기에 직면했다. 1994년부터 북한의 핵 개발을 뻔히 알면서도 핵무장을 억제하지 못하고 핵 인질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한국 안보전략은 누가 결정하고 시행하는가? 왜 이러한 위기가 발생된 것인가? 북한은 지난 9월 9일 5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016년의 두 번째 핵실험이다. 미국 38노스를 운영하는 조엘 위트 박사는 북한이 앞으로도 3회를 더 즉시 실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방송은 5번째 핵탄두실험 성공으로 목적에 맞도록 다양한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5차 핵실험은 핵탄두 소형화 완성과 핵무장을 의미하며 빠르면 1년 이내에 실전배치도 가능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랜드 연구소와 조엘 위트는 북한이 2020년까지 약 50~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으며 실전배치는 2025년까지 완성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핵탄두 운반수단인 미사일 개발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은 1998년 지상발사 장거리 미사일의 최초발사 이후 2016년 2월까지 총 6회 반복 시험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터널 보호시설을 이용한 고속도로 상에서 이동 발사대(Mobile launcher)에 장착된 무수단 미사일 2발의 동시 발사장면을 공개했다. 5차 핵실험 직후에는 새로운 로켓 엔진 연소시험(80톤 추력 주장)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지난 9월 1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 발사하였다. 한국 국방부는 고도 500km 이상, 사거리 500km를 비행하였으며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의 북한 전문가인 브루스 벡톨은 북한 잠수함 탄도 미사일은 중국의 SLBM과 판박이라면서 중국의 북한 미사일 개발 지원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북한은 이제 핵탄두 소형화와 운반수단인 지상 및 해상발사 미사일의 완성 단계에 접근해가고 있다.


5차에 걸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는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집권 이후 최우선적으로 조기 핵무장을 서두르는 것이 역력하다. 중국은 북한 핵 개발을 간접지원 하였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북한정권 생존의 후원자로 등장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1994년 이후 지속 추진해왔던 북한 핵 개발 억제전략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반면 북한은 그들이 추구해온 핵개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은 전략적 충격(Strategic Shock)과 함께 남북 군사력 균형이 깨지는 심각한 핵전쟁 위기에 직면했다.


이 글은 1994년부터 2016년 10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북한 핵 개발 전략과 한국의 대응전략에 대해 종합비교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안보전략의 정치적 목적(Ends), 수단(Means), 방법(Ways)의 틀(Frame-work)을 기준으로 ‘북한 핵무장 위기의 정치적, 전략적 의미의 본질’과 ‘김정은 조기 핵무장 추구 의도’, 그리고 ‘한국의 미래 안보전망과 전략선택’에 대해 분석한다.


2. 북한 핵무장 위기의 본질


한국과 북한은 1994년부터 약 20여 년간 ‘핵 개발’을 놓고 정치 및 군사전략의 치열한 대결을 벌여왔다. 북한 5차 핵실험과 지상 및 해상 장거리 미사일 발사성공은 한국의 억제전략 패배를 의미한 것이었다. 국가의 장기 안보위협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과거 대북정책과 군사전략을 고려하면, 이러한 전략적 패배는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화된 당연한 결과였다. 한국의 많은 정치지도자들은 대북정책에서 북한 핵문제를 미국의 문제로 보려고 했으며, 군사지도자들은 북한이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1994년에 이미 평가했으면서도 미래 핵무장 위협에 대응할 전략무기 선택을 소홀히 하였다.


김일성이 핵 개발을 결심한 근본 동기는, 한국전쟁 패배 이후 북한 정권 생존을 위해서 절대무기인 핵을 반드시 보유해야함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김일성은 한반도는 좁고 핵은 협상용으로 사용해야하며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새로운 위험을 발생시킴으로 이를 중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정일·김정은의 세습정권체제 고수전략은 핵무장을 현실화 시켰으며, 이는 한국 안보위기와 함께 김정은 정권에도 결코 기회가 아닌 최악의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가. 김정일은 왜 핵 개발을 선택하였는가?


●김정일의 1990년대 전략목적(Ends): 절대적 체제생존


북한은 비정상적인 실패 국가(Failed States)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의 국가전략은 1980년대까지 ‘무력에 의한 남한 적화통일’이었으나 1990년대에 북한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전략목적(Ends)은 ‘북한체제 생존’이 최우선이었다. 북한의 김정일은 폐쇄고립전략과 함께 북한세습 정권유지의 생존전략 수단(Means)으로 핵개발을 선택했다. 당시 북한의 가장 큰 위협요인은 국제적 고립(공산권 붕괴, 소련 해체, 한국과 중국·소련 수교의 충격 등), 국내 경제붕괴(주민 식량배급 중단위기), 재래식 군사력 우위의 상실, 한국 경제발전에 따른 북한 흡수통일 우려 등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당시 전략적 환경은 그야말로 국가생존이 걸린 사면초가의 상황으로 평가된다.


미래전략선택의 과정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은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갈림길에서 김일성은 돌연 1994년 7월 8일 사망하였다. 그리고 김정일은 최악의 비대칭 전략인 핵 개발을 선택하였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에 있어서 핵은 북한 체제 보위를 위한 국가전략의 목적(Ends)이자 수단(Means)으로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만병통치약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전략수단(Means): 비대칭 전력, 핵 개발


군사력 면에서 북한은 1980년 중반 이전까지 점하고 있던 재래식 전력 우위를, 중반 이후 서서히 상실함으로써 기습남침 능력을 점차 잃어 가고 있었다. 반면, 한국군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기반으로 방위산업이 급성장했다. 1970년대 말에 개발이 시작된 K1전차(일명 88전차)가 1987년부터 전력화되는 등 장갑차, 야포, 군함, 전투기를 비롯한 재래식 무기의 한국형 독자모델이 야전 배치됨으로써, 한미연합전력은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우위를 점차 상쇄시킬 수 있게 되었다. 국방부는 1988년 말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은 북한대비 65% 수준이며 한미연합전력은 70% 수준으로 평가하였다.


북한 비대칭 전략은 이미 1970년대부터 화학 및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면서 착수되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대남 군사전략을 비대칭 군사전략으로 전환하여 국방비용이 적게 소요되면서 최대 효과를 발휘하는 전략무기, 즉 잠수함, 특수부대전력,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념하게 되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의 1990년대 핵 개발은 자신의 정권세습과 북한체제 존속보장을 위해 선택한 정치적 목적(Ends)이며 군사적 수단(Means)이었다. 따라서 북한이 핵 포기를 전제로 반복해 왔던 1994년부터 2016년까지의 핵 협상은 처음부터 위장된 ‘핵 포기 협상을 통한 핵 개발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의 전략방법(Ways): 기술, 비용, 전략적 개발여건조성


북한의 비대칭 핵 개발전략은 1950년대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에 자체설계한 원자로를 건설 운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1990년대 초에는 핵연료 확보에서 재처리에 이르는 일련의 핵연료주기를 완성하였고, 1994년에는 핵무기 제조 직전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90년 초에 소련의 KGB 북한보고서는 북한이 국제사회의압박을 우려하여 핵실험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핵 개발을 위한 김정일 전략방법은 크게 ‘기술, 비용, 전략적 개발 여건조성’의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핵 개발 기술은 1950년대부터 중국과 구소련, 그리고 파키스탄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핵 개발 비용의 확보는 북한 제2경제위원회가 주도하여 주민희생을 통한 ‘핵 개발 All-in’ 전술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개성공단 임금, 금강산관광자금, 한국의 대북지원자금 등이 큰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핵 개발을 위한 전략적 여건조성은 위장평화 협상, 속임수 외교, 자포자기식 도발과 보상 획득 등의 방법이 적용되었다. 김정일은 핵 개발을 위한 전략적 여건조성과 활용에 모든 노력을 집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94년 이후, 김정일은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취약시기, 북한에는 유리한 전략적 틈새시기에 핵 개발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년도인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했다. 김대중 정부는 처음부터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으로 고수하였으며 2000년에는 분단 이후 최초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북한은 한국 대통령 선거와 IMF사태로 심각했던 1997년부터 2002년 9월까지 70여 차례 핵 기폭장치 폭발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핵 개발계획(파키스탄으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은)을 시인하고 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2차 핵 위기가 발생한 것은, 미국이 2001년 9.11테러를 당한 후 이라크 공격을 준비 중이었던 2003년 1월 10일이었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선언한 2005년 2월은 햇볕정책을 그대로 계승했던 노무현 정부 집권시기로서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 지역에서 다국적군과 안정화 작전을 수행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북한은 200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했고 그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나. 김정은 조기 핵무장 의도는 무엇인가?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하고 김정은이 3대째 북한 세습정권을 승계하였다. 김정은은 집권 후 조기 핵무장을 서두르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2013년 2월 12일에는 3차 실험, 2016년 1월 4차 실험을, 9월 9일 5차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미사일은 스커드(사거리 300~1천㎞) 16발, 노동(1천300㎞) 6발, 무수단(3천500~4천㎞) 6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3발 등 탄도미사일만 총 31발을 발사했다.


김정은의 조기 핵무장 의도는 무엇인가? 북한의 발표와 국내외 전문가들의 판단을 종합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인도와 파키스탄과 같은 수준의 핵보유국 지위를 조기에 획득하는 것이다. 둘째 핵보유국 지위 획득 후, 핵 동결 또는 군축을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체결과 대북제재 해제를 추진하는 것이다. 셋째 대북제재 해제를 달성 후 북한 경제 재건에 집중하면서 제한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넷째 장기적으로 평화협정을 기반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관철하고 여건 조성 시 핵무기를 수단으로 하는 무력 적화통일을 달성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판단한 의도가 맞는다면, 이는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전략이 과거와 같이 유화정책으로 일관하는 경우에만 달성 가능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4차와 5차 핵실험으로 UN제재결의안 2270호와 추가적인 제재가 진행되는 상태에 있으며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과 외교관계 단절, 무역관계 중단 등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국제적 단절상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이용한 출구전략을 추진할 수도 있다. 북한은 중국과 1961년 조중 우호협력조약으로 군사적 동맹관계이다. 러시아와는 2000년 북러 신조약을 체결하였으며 2014년 최룡해는 러시아 푸틴에게 신군사동맹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3. 북한 핵무장에 직면한 한국의 전략선택


한국의 북한 핵 개발 억제전략은 완전히 실패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정치·군사적인 위기관리 및 대응전략에 근본적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이 북한 핵무장에 대비한 미래전략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국은 왜 북한 핵 개발 억제에 실패하였는가를 정확히 분석하여 그 교훈을 도출하고 미래전략에 적용해야 한다. 둘째 북한 김정은의 의도와 핵무장을 전후한 그들의 채택 가능한 방책을 분석해야만 한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 관련 2016년 10월 현재 제기되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가. 북한 핵 개발 억제 실패요인과 교훈


●지난 20년간 지속된 한국 대북정책의 정치적 목적(Ends)은 무엇이었나?


북한 핵 개발 억제를 위한 전략방법(Ways)과 수단(Means)은 무엇이었는가? 한국의 지난 20년간 대북정책의 명목적 목적은 대화와 협상에 의한 먼 미래의 평화통일 여건조성이었으며, 실질적인 목적은 통치세력의 단기적 이익에 있었다. 그리고 현실적 위협인 북한 핵 개발 억제를 위한 전략방법과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정치 및 군사지도자들에 의해 최소한 2006년까지는 사실상 무시되었다. 북한 1차 핵 위기가 발생한 1994년부터 현재까지 일관되게 한국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 정책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를 뒷받침해야만 할 북한 핵 개발 억제를 위한 전략목적(Ends)과 방법(Ways), 수단(Means)이 빠져있었다. 왜냐하면 유화적 대북정책은 북한 핵 개발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국방전략 선택과 정면으로 충돌하였으며, 국방전략은 대북정책의 하위전략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부터 2014년까지 국방백서에 의하면 북한 핵 개발에 대한 위협평가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나 공식적으로 군사적 대응전략을 명시한 것은 2014년 국방백서에서 최초로 나타나고 있다. 최초 핵실험이 진행된 2006년에도 북한 핵무장에 대비한 대응 전략무기 도입은 고려되지 않았으며, 당시 기존 군사전력을 보완하는 소극적 대응에 그쳤다. 1990년 초 한반도 전략상황은 한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으며 1945년 분단 후 남북의 체제경쟁에서 한국은 승리했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생존을 위한 핵 개발을 선택하였다. 미국은 예방공격으로 북한 핵시설의 군사적 타격을 심각하게 검토하였으며 한국은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그러한 위기상황에서도 한국의 대북정책은 대화와 협상에 의한 평화적 통일을 내세우고 있었다.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인식에는 북한은 (같은 민족임으로) 대화와 협상 그리고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지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착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정일과 김정은 세습권력은 전혀 다른 부류라는 평가를 간과한 것이었다. 당시 대북정책의 추진목표는 안보위협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국가전략이 아니라, 집권세력의 정책의지를 반영한 정권차원 대북정책 추진이었다. 이러한 대북정책이 추구한 실질적 목적은 대화와 협상으로 통일에 대한 업적을 남기고 이를 통해 개인 또는 집권세력의 영광과 이익을 우선 추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정권이 교체될때마다 대북정책은 새로운 단기적 목표가 제시되었으며, 제시된 모든 정책은 결국 대화와 협상 중심의 장기적 유화정책으로 귀결되었다. 대표적 사례인 햇볕정책은 1998년부터 현재까지 좌우 정치세력 간 이념대립과 대북정책 갈등의 원천이 되었으나, 차후 우파정권도 결국 대화/협상만의 방향성을 지속 유지했다. 좌파 정치 세력은 북한 5차 핵실험이 진행된 이후에도 햇볕정책에 근거한 대화와 협상만을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수단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북정책은 국방정책과 충돌하면서 북한 핵 개발 억제전략은 통합조차 되지 못하였으며 국방전략은 사실상 무시되었다.


북한의 위협은 군사적으로 전혀 변하지 않았음에도 북핵대응 국방전략은 대북정책 영향으로 우선권이 부여되지 못했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이 1992년 5월부터 1993년 2월까지 진행되었으며 3월 12일 북한은 NPT 탈퇴 서한을 UN안보리에 제출하면서 1차 핵 위기가 발생했다. 그리고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미 양자회담으로 10월 21일 제네바 합의문을 체결했다. 그러나 북한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70여 회의 핵 기폭장치 폭발시험과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는 등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왔다. 2003년 2차 북한 핵 위기 사태 이후에도 동일한 현상이 반복되었다. 당시 한국 통치권은 북한 핵 개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었으나 군사적 대응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전략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는 대화와 협상을 지속하고 이를 통해 유리한 전략적 여건을 조성하며, 여건이 조성되면 핵 개발을 강행하는 이른바 위장된 협상전술(벼랑 끝 외교로도지칭)이었다. 1994년 국방백서는 이를 정확히 적시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대북 통일정책이나 외교정책에서 이러한 국방부의 위협평가에 대한 대응전략을 적용한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북한 핵개발 억제전략에서 대화와 협상이 결렬되어 북한 핵무장이 현실화될 경우에 대한 대응전략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 당시 북한 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문제로 간주되었다는 많은 증언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한국 대북정책의 정치적 전략목적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먼 미래의 평화통일 여건조성이었으며, 북한 핵 개발 억제는 목적이 아니었다. 한국의 북한 핵 개발 억제를 위한 전략방법과 수단은 대화와 협상, 경제적 보상 외에는 없었던 것이다.


●한국군은 지난 20년 동안 왜 전략무기를 개발하지 못했는가?


전략무기의 적기개발은 북한 핵무장 이후 예상되는 위협과 위기인식, 정치지도자들의 정치적 결심, 군사지도자들의 전략무기 선택, 전략무기 개발기술과 비용보장 등의 모든 요소가 적시에 결정되고 지원되어야만 가능하다. 북한 4차 및 5차 핵실험 이후에, “한국군은 북한이 핵을 완성해온 지난 20년 동안 왜 독자 전략무기 하나 개발하지 못하였는가?”하는 비난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은 한국 정치 및 군사지도자들은 북한 핵무장에 대응한 독자 전략무기 개발을 적시에 선택하지 않았으며 위협을 무시 또는 소홀히 하면서 해결을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략무기 선택을 결심하는 주체는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들이다. 그들은 2013년 제3차 핵실험 이전까지 북한 핵은 미국이 대응해야 할 사안으로 간주하였으며 대응 전략무기의 선택과 결심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김영삼 정부시기부터 한국의 국방전략은 “대북위주 개념에서 대주변국 전 방위 우호협력 개념으로” 전환되었다. 통치권자들의 북한 핵에 대한 안이하고 잘못된 인식은 북한 핵무장에 대비하는 국방전략과 전략무기 선택을 위한 결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지도자들은 “민족이 동맹보다 앞선다.”는 낭만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대북 유화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었으며, 군사지도자들은 북한 핵 위협 현실화 이후에 나타날 안보위기의 심각성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략무기 개발 소요시간을 고려할 때, 2016년 현재 즉시 사용할 무기라면 미군의 미사일 방어체제(MD: Missile Defense)와 같이 최소 10~20년 전인 1990~2000년대에 결정되고 준비됐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때는 미래 위협전망을 기준으로 전략무기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1994년 이후의 국방백서를 기준하면, 전략무기선택은 2014년 백서에 최초로 명시되었고 최초 핵실험이 진행된 2006년에도 기존 전력을 보완하는 소극적 대응이었으며 그 이전에는 군사적 대응 논의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1998년 대포동1호 미사일 발사시험 이후 미국의 미사일방어시스템 공동개발 요구를 1999년 김대중 정부는 공식 거부했다.


한국은 3차 핵실험 이후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와 킬체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이는 2020년 이후에 야전배치가 가능한 무기체계이며 구축 후에도 미군의 우주기반 감시-결심-타격 시스템과 분리되어 운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한국 통치자들의 북한 핵에 대한 인식부족은 한국군이 전략무기를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인식은 보수나 진보 정권 모두 유사하였으나 특히 진보 정권으로 분류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에 더욱 심각한 인식의 부족을 나타냈다.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에는 북한 핵위협은 2020년경에는 감소되거나 소멸될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통치권자들의 북한 핵위협에 대한 인식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의도된 왜곡인식이었으며, 북한 핵무장에 대비하는 국방전략과 전략무기 선택 결심에는 오히려 핵심저해요인으로 작용했다.그럼에도 한국의 군사지도자들은 2016년 현재 북핵대응 독자 전략무기 부재 사태에 대해 모든 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 안보 최고의 전문가이자 책임자인 군사지도자들은 국가통수권자와 정치지도자들에게 충분한 자문과 조언을 해야만 하며, 위협을 국민들에게 알려야만 할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군사지도자들의 임무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임명권자 개인이나 어느 정치세력을 위한 전략을 추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비록 국내외 강력한 저해요소에 직면해서도, 군사지도자들은 이를 극복하고 안보전략목적(Ends)을 반드시 달성해야만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국 군사지도자들은 1994년 이후 북한 핵무장 위협평가를 명백히 인식하였음에도 전략수단(Means)인 독자 전략무기 획득을 추진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미국의 맥아더 만주폭격 주장에 대한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간 전략에 대한 의견충돌’이 의미하는 ‘정치와 군사의 전략적 통합’을 검토할 필요가 있게 된다.


즉 안보전략에서, ‘정치와 군사의 전략적 통합’이란 평시 전략조정과정(Strategy Adaption Process)과 의사소통을 통해 정치적 전략목적(Ends)과 군사적 수단(Means)을 치밀하게 통합(Integration)하여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안보전략은 정치와 군사 지도자, 그리고 국민들 간의 국가안보에 대한 교류 및 소통(Communication)정도에 따라 전략통합 성공 여부가 좌우되어 왔다. 북한 핵 개발 위협에 대한 한국의 올바른 대응을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국가 정치지도자들이 위협과 취약성에 대해 정확히 인식을 공감해야 한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은 대북 유화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었으며, 군사지도자들은 북한 핵 위협 현실화 이후에 나타날 안보위기의 심각성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하였고, 인식했더라도 정치지도자들과 의견 충돌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군사전략은 국가안보전략의 기본이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또 다른 수단(Other Means)이다. 그러므로 정치와 군사는 문민통제 차원에서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하나,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차원에서는 철저히 통합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정치 및 군사지도자들은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위하여 국제정치와 전략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통찰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대학이나 군사교육에서 이러한 교육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군사교육은 1990년대 이후 철저히 군사작전에 치중한 교육에 집중하고 있으며 국가와 국제정치로부터 시작되는 정치와 안보, 국방과 군사전략에 대한 교육과정이 크게 감소되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의 안보는 주변 강대국들의 영향이 지배적임으로 주변국 안보에 영향을 주는 독자 전략무기 획득 추진은 어렵다는 인식의 문제가 있다. 이러한 인식은 한반도에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도 주한미군이 이를 막아줄 것이므로 획득이 어려운 전략무기는 주변국 갈등을 일으킬 필요 없이 일단 보류해도 된다는 미군 의존적 안보인식과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전략무기 획득이 주변국 안보에 영향을 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며 주변국 영향으로 과거 전략무기 획득이 문제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1978년 백곰 미사일 발사가 성공한 후에 미국은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강력히 억제해 왔다.  


전두환 정부 집권 후 1980년 초에 국방과학연구소의 전면 개편은 한국의 전략무기 개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때문이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미국이 우주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던 1980년 말부터 1990년대에 미국과 미사일 전략무기 공동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있었다. 한국은 1987년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공동개발에 국방부가 아닌 과학기술처가 참여하였으나 전략적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1989년 철수하였다. 한편 이스라엘은 1986년 미국과 공동개발에 성공한, 당시 세계 최신예 Lavi 전투기 판매와 생산을 포기 당했다. 그럼에도 1987년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공동개발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스라엘은 1967년 당시 동맹국 역할을 했던 프랑스에 외면을 당하면서 미국을 동맹국으로 선택하였고, 동맹국의 중요성과 이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한국은 동일한 시기인 1987년, 전략무기로 차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을 선택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2016년 현재 T-50 고등 훈련기를 수출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미래 예상전략무기인 미사일방어체제 사업을 선택한 것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6년 현재 한국은 북한 핵 대응을 위한 미사일을 이스라엘에서 구매하고 있다. 북한이 1998년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하자, 미국은 1998년 미사일 방어법을 제정하면서 1987년 요청했던 일본과 한국의 참여를 또다시 요청했다. 일본은 적극 참여하여 2016년 현재 해상 발사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완성하고 있다. 반면 직접 당사국 한국은 1999년 미국 공동개발사업 참여를 공식 거부하였다.


2016년 현재 한국은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으나 요격 미사일 SM-3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야만 한다. 북한 핵 개발에 대응하는 전략무기는 전구 미사일 방어체제(TMD: Theater Missile Defense)와 Kill-Chain 시스템이다. 여기에 적용된 작전개념은 네트웍 전쟁(NCW: Network Centric Wafare)인 ‘감시-결심-타격’ 개념으로서 우주 기반의 정보·감시·정찰 및 지휘통제 시스템(C4I: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and Intelligence)이 모든 작전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전략무기는 대부분 첨단기술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요구하므로, 한국 단독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업이다. 미국도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을 위해서 첨단기술 개발과 비용문제로 인해 일본과 한국의 참여를 요청했을 정도였다.


반대로 한국은 1974년 율곡사업을 추진한 이래 1980년대부터 한국형 독자모델을 개발하면서 주한미군 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가능한 제외하고 전력증강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러한 관행은 2000년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이러한 방법은 제한된 국방비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 당연한 것이었다. 한국의 경제력은 1980년대 중반부터 급격히 확대되어 1990년대 중반에는 일정 규모의 전략무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미국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1998년부터 IMF체제 하에 있었으며 이는 1999년 미국 미사일 개발 참여 요청거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위기 시 주한미군이 막아줄 것이라는 상당한 믿음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치지도자와 군사지도자들에게 미래전략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2009년 제2차 핵실험 이전까지 대응 전략무기는 선택하지도 결심하지도 않았으며, 북한 핵은 미국이 대응해야할 사안으로 간주하였다. 그럼에도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은 아직도 이러한 주장을 반복하면서 사드배치 반대를 주도하고 있다.


나. 한국의 북한 핵무장 대응전략 선택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로 남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인가?


일반국민 상당수와 진보 정치세력은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로 남한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 불바다부터 핵 공격까지 위협을 반복하면서 그들 내부체제 공고화와 한국의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북한은 한국을 핵이나 미사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인가? 그 전제조건은 다음과 같으며 이를 기준으로 최선, 중간, 최악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김정은이 핵 공격을 현실화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개혁개방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김씨세습정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군사력을 능가하는 군사적 수단은 핵 미사일밖에 갖지 못할 것이다.


국가는 언제 전쟁을 결심하게 되는가? 전쟁발생은 첫째 유리한 군사적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와, 둘째 자살적 군사적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이며, 그리고 국가의 장기전망이 자국에 유리하면 전쟁을 고려하지 않으나, 불리하면 전쟁을 도발했다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의 채택 가능한 전략은 ‘Win-now, Lose Later’ 인가? 아니면 ‘Losenow, Win-later’ 인가? 불행하게도 북한의 미래전망은 장, 단기를 막론하고 극히 비관적이다. 김정은의 조기핵무장 의도에서 이러한 모습이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김정은 입장에서 최선의 방책(1번)은 협상을 통해 현 상태 동결로 핵보유를 인정받고 핵 확산 금지를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핵 군축 협상을 통해 핵 폐기 교환을 추진하면서 유리한 전략적 여건을 조성하고, 이를 통한 경제적 제재 해제와 보상으로 경제를 회복시킨다. 동시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제한적 개혁개방을 점진적으로 도입하여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 전략적 여건 성숙 시 한반도 무력통일을 추구하거나 김정은 정권의 장기 존속을 보장받는 것이다. 방책 1번은 많은 전문가들이 핵실험이 시작된 이후 북한이 추구할 가능성 있는 방책으로 제기하였던 내용이다. 김정은은 핵 완전 폐기를 결코 하지 않을 것임으로 국제사회와 미국은 핵 동결과 확산금지 그리고 최소한의 북한변화를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변화’에는 핵동결 후 폐기 및 확산금지 문제와 인권문제 그리고 제한적 개혁 개방이 반드시 요구될 것이다.


특히 김정은은 2016년 현재 인권침해 현행범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된 상태이다. 또한 북한전략 목적이 북한체제 유지가 아닌 김정은 정권 존속이므로 인권문제와 제한적 개혁개방의 수용에는 한계가 있다. 인권문제는 정치범 수용소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며, 개혁개방은 그 자체가 정권의 취약성을 확대시켜 정권불안정이 급상승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의 의도는 달성되기 어려우며 새로운 핵무장을 이용한 위협과 협상전략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중간 방책(2번)은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한 후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핵 공격 위협을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장을 고수하게 되고 경제적 봉쇄는 세계경제로부터 차단 내지 퇴출되는 수준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북한은 핵 무장을 완성한 후 핵 위협을 통해 국제사회를 핵전쟁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 국제사회는 미국과 한국, 일본에게 양보를 강요하게 되며, 북한은 협상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다. 핵 위협과 인질의 직접 공격대상은 한국, 간접 공격대상은 일본과 미국이 될 것이며공격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제한적 도발이 불가피할 것이다.


방책 2번은 북한의 핵 위협 과정에서 핵전쟁 억제를 위한 Escalating 현상이 불가피하게 나타날 것이다. 즉, 도발위협과 대응을 가정해보면 핵 공격위협-보복위협, 재래식 도발-보복공격, 미사일 공격-보복타격, 제한목표 핵공격 징후-선제타격 등의 상승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천안함 공격, 연평도 포격 등을 직접 지휘했다고 알려진 김정은의 결심은 예상 외로 빠르고 강력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의 양보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한국의 결심을 지연시키고 미국을 압박할 것이다.


여기에는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 선진 국가들이 동참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한국이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할 경우 북한의 도발과 위협은 기정사실이 되면서 한국의 지연된 보복은 어렵게 될 수 있다. 이러한 사태 발생 시 한국은 국제사회의 압력 거부가 어렵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도발 시 한국과 미국의 정치 및 군사지도자들 결심이 얼마나 즉각 보복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차후 모든 대응전략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방책 2번도 김정은의 의도가 달성되기 어려우며 결국 최악의 대결로 귀결될 것이 예상된다.


최악의 방책(3번?)은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한 후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핵 공격 위협을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에 실패할 경우이다. 북한은 핵무장을 고수하고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 핵 포기를 더욱 강력히 촉구할 것이며 북한은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과거 적용했던 자포자기식 대남도발과 핵 인질 위협으로 현상타파를 시도할 것이다. 이를 통한 협상과 경제적 보상, 평화체제 전환 등을 시도할 것이나 모두 거부당할 것이다. 북한의 고립과경제적 차단은 국내경제와 정권 안정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김정은과 핵심 측근들은 현상타파를 위한 탈출구를 모색하면서 최악이라고 판단될 경우 자살적 핵공격 방안을 심각히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시나리오에서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방책 3번으로 발전될 것이며, 이는 북한의 핵공격이 배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떠한 시나리오를 채택한다고 해도 북한은 핵 공격방법을 모든 분야에서 면밀히 준비할 것이며, 한국은 이에 대한 가용한 모든 방책을 준비하고, 치밀하고 정확한 작전수행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북한 핵무장에 직면한 한국의 안보전망은 무엇인가?


북한 핵무장에 직면한 한국의 미래 안보전망은 우선 남북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즉, 횟수는 감소하나 강도는 제한된 재래식 교전상태를 능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왜냐하면 불행히도 김정은 체제가 존속하는 한, 북한의 미래전망은 비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북한 핵무장에 직면하였으며 동시에 북한 핵공격 억제전략 실행 단계에 진입했다. 핵억제전략은 필연적으로 위협과 대응과정에서 비군사 분야로부터 군사적 충돌까지 적대적 갈등상승(Escalating) 과정이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한반도는 북한 핵 개발이 계속 진행되는 과정에서 군사적 위협과 도발, 대응과 보복이 반복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앞에서 제시된 방책 1번(협상을 통해 핵 동결로 보유를 인정받고 핵 확산 금지를 약속하는것)과 2번(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한 후 한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핵 공격 위협을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의 과정이 지속될 것이다. 한편, 북한 핵무장 위기로 남북한 군사력 균형이 깨지고 현상타파가 되는 상황이 초래됨으로 한국에게 새로운 통일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북한 핵무장과 한국의 대응 전략무기는 대체로 2020년을 전후하여 완성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부터 2020년까지는 대단히 위험한 군사적 대치상태가 계속되면서, 핵무장 억제성공여부를 결정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미국이 참수작전이나 핵심표적 은밀 타격을 결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이러한 상황을 주도하지 못할 경우에는 역으로 분단 고착현상이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한국의 미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분석내용은 모두, 한국이 전형적인 핵전쟁 억제전략에 진입했음을 의미하고 있다.그리고 김정은은 최악의 상황에서 핵 공격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어떠한 시나리오가 적용되어도 국민들의 직접피해가 없도록 하는 전략을 치밀하게 수립하여 추진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사전에 공식발표하고 일정수준의 위험 감수를 당부해야 한다. 또한 국민들이 불안과 갈등으로 위축되어 국민의지 결집에 문제가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한국의 핵억제 전략에서, 비군사적 수단과 군사적 수단적용의 정 확성 여부가 억제성공 핵심요인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북한 김정은에게 모든 시나리오의 종착지는 언제나 중국, 러시아를 이용한 출구전략 모색일 것이다. 북한은 양국과 현재 상호협력조약 체결국이며, 특히 중국은 북한 위기 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이 적용되고있는 국가이다. 북한의 전략적 위기 봉착 시에 양국은 적극적 협상을 요구할 것이나, 최악의 사태 발생 시에는 과거 냉전과 같은 강력한 군사적 대응블록을 형성하여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 핵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상호대응하면서 군사대결 Escalating 과정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전쟁억제력의 가장 강력한 요소는 정치세력과 국민의지 결집이다. 정치세력과 국민의지가 강력히 결집되어 있으면 철저한 전쟁준비가 가능하며, 억제 실패 시 즉시 결심하여 선제공격을 보장하고 있음을 상대에게 충분히 보여주고 인식시킬 수 있다. 통치권자와 정부, 군대, 국민의 3위일체 결집력은 철저한 전쟁준비를 통해서 가장 강력한 전쟁 억제를 달성할 수 있는 원천인 것이다. 전쟁에서 항시 기습공격(Surprise Attack)을 허용하는 핵심요인은 ‘정치 및 군사지도자(결심권자)의 결단력 부족에 따른 전략선택 결심지연과 회피’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취약상태는 국내적으로 내부 갈등과 분열이 심각할 때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국가의 내적 단결력은 선제공격전략을 가능하게하며, 선제공격전략만이 바로 기습을 허용하지 않는 가장 강력한 억제방법이며 보복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제 국제사회가 북한핵무장을 중단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김정은을 제거하거나, 북한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김정은의 핵 포기 선택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제거는 참수작전과 북한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방법이 있다. 참수작전은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하므로 북한 내부로부터 체제변화와 붕괴를 유도하여 레짐을바꾸는 방법이 우선 적용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이러한 방법적용을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 주민과 북한 통치 엘리트를 분리시켜 상호대립 시키는 전략이다. 참수작전은 군사적 수단 적용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 가능한 방법이다.


4. 결 론


북한 5차 핵실험이 몰고 온 북한 핵무장 위기의 국제정치적, 전략적 본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국제정치적으로는 남북한 군사력 균형이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현행 국제질서가 타파됨으로써 새로운 국제질서 요구가 나타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블록(Bloc)형성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전략적인 면에서, 북한의 국내적 시각으로 보면 첫째 북한 핵무장은 폐쇄와 고립을 통한 체제생존 보장전략의 승리인 반면, 둘째 국제사회로부터 폐쇄와 고립심화 그리고 더욱 심화된 경제봉쇄로 인한 국내경제와 정권붕괴 위기 재 직면을 의미한다. 셋째 북한 핵무장은 북한 미래전략의 선택 가능한 방책을 모두 제한하게 되어, 오직 핵무장을 끝까지 사수하는 것밖에 다른 대안이 없음을 의미한다. 즉, 김정일의 개인권력유지를 위한 핵 개발 전략선택은 북한을 비정상적 국가로 파멸시키면서 국가의 미래세대를 최악의 고난상태로 몰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전략적 시각으로 보면 첫째 한국 통치자들은 먼 미래통일 여건조성 대북정책을 근 미래 북한 핵 개발을 억제할 전략으로 착각함으로써 김정일 핵전략에 대응할 전략목적(Ends)을 상실했고, 대화·협상은 오히려 핵 개발 여건을 조성해 준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는 한국 정치지도자들이 지난 20여 년간 주장해온 대북정책은 실패였으며, 셋째 한국 정치세력 갈등심화와 국민여론 분열로 인해 국가 전략 목적(Ends)이 불분명했음을 의미한다. 넷째 한국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의 전략구상능력(Strategic Capability)과 억제의지(Will) 부족으로 인해, 한반도 군사전략에서 주도권을 북한이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다섯째 북한 핵무장은 한반도 현상유지 균형이 타파됨으로써 위기(Crisis)가 조성된 반면, 새로운 균형을 요구하는 통일의
기회(Opportunity)가 왔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제 북한 핵전쟁 억제전략 실행단계에 진입하였다. 한국 정부는 2016년 현재부터 북한 핵무장에 의한 안보위기사태임을 공식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전략은 북한 핵무장 억제전략에 집중되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안보 전략에 대한 정치세력 갈등과 국민 분열 상태를 북한 핵무장 억제를 위한 국가적 노력통합 상태로 재정립, 결집시켜야 한다. 정치적, 외교적 노력은 국민결집 의지로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군사적 위기는 새로운 혁신을 통해 혁명적 군사개혁의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및 군사지도자들은 국가의 모든 지혜를 모아 국가안보에 대한 공통영역을 도출하고 여야의 모든 정치세력과 국민, 그리고 정부의 국가노력이 집중되는 중심(中心)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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