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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이념과 진영논리 넘어선 북한인권운동 시작돼야"
북한인권운동 좌우통합 시도하는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를 만나다

[양정아 | 편집장]

“대북제재는 북한 핵문제 해결은 물론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도 실패했다.”


“진보세력은 햇볕정책에서 벗어나 대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한다.”


10월 초 서울시청 지하에 위치한 시민청의 한 회의실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대북제재가 오히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한 발표자의 발언에 반박 의견이 제기된다. 몇 차례의 공방이 오간 이후 양 측의 의견을 참고로 해 발표 자료를 수정하기로 했다. 인권단체 활동가, 정부 정책담당자, 국제기구 직원, 연구자 등 각계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북한인권과 민주화,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 등 북한인권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북한인권대화모임의 한 장면이다.


마침 이날은 북한인권법의 향후 과제, 대북제재와 인권의 연관성,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시민교육 등을 주제로 토론이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기본적으로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보수, 진보 성향을 감안해 균형 있게 짜여졌다. 이날 모인 20여 명의 참석자들은 상대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나름의 합리적 논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북한인권문제와 관련해 양측의 입장 차를 부각하기 보다는 현실적 대안 모색에 주력하려는 모임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2014년부터 이 모임을 기획하고 이끌어 온 이성훈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를 만나 북한인권문제에 있어서 진보, 보수 간의 협력 가능성을 들어봤다. 이성훈 상임이사는 이 모임에 대해 “북한인권을 좁은 의미의 인권이 아니라 넓은 의미 즉 북한민주화,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 통일운동, 평화운동 등과 연계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보수와 진보 또는 좌-우의 진영논리 구도에 갇혀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북한인권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특정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 공감과 합의 수준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바, 방콕 등 해외의 인권단체에서 10여 년 넘게 경력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국장 등을 지낸 그는 국내 대표적인 인권 전문가로 꼽힌다.


이성훈 상임이사는 북한인권문제 이외에도 국내 인권문제나 정책 등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냈다. “현재 세대의 대다수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과거 수많은 선배가 흘린 피와 땀의 결과이다. 국제사회 양심세력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지만 한국의 민주화는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최근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모두 병목현상 또는 적체현상에 직면해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국민들의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정치가 이를 채워주지 못하면서 많은 국민이 민주화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권에 기반한 공적개발원조(ODA)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에주력하고 있다는 그는 “잘 알다시피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유럽의 많은 지원을 받았다”며 “이러한 지원은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운동의 발전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ODA의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국제 기준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다”며 “한국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의 전제이자 결과라는 것이다.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이 인권, 민주주의와 선순환하는 이른바 ‘한국형 ODA 모델’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인권재단에서 상임이사로 일하고 계신데 어떤 계기로 일하게 되셨나요?


2010년 3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6년이 넘었습니다. 2008년부터 2년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책국장으로 일했고, 그 다음에 한국인권재단에서 상임이사로 시작했습니다. 직책은 상임이사이지만 상근 사무국장이 있기에 비상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인권재단은 1999년에 설립되었는데 당시 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란 가톨릭 NGO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권재단이 2000년부터 개최한 일련의 제주인권학술회의에 초청받아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태국 방콕에 있는 아시아인권단체의 협의체인 포럼 아시아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할 때는 잠시 이사직을 맡기도 했었습니다.


한국인권재단의 사업을 주제로 이야기 하면 기업과 인권, 지자체 또는 도시와 인권 그리고 공적개발원조(ODA) 분야에 인권을 확산 또는 주류화 하는 사업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인권운동의 관심 분야는 아닙니다. 재단 활동의 모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우리가 한다’인데 기존의 인권단체가 아직 본격적으로 대응하지 안 하거나 못하는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인권리더십 양성을 위해 국제인권모의재판, 모의 유엔 보편적정례검토(UPR), 인권평화토론대회, 유럽인권연수 등 다양한 인권 교육 연수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시민사회운동 특히 인권운동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광주민주화운동 다음해인 1981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해서 군대를 마치고 1988년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암울했던 시기였습니다. 대학 때는 주로 가톨릭학생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졸업 무렵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홍콩의 아시아가톨릭학생운동 사무국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 자유화도 시행되지 않던 때였고 해외에 나간다는 건 유학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반대가 심했는데 저는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을 느꼈습니다. ‘역마살’이기도 한데 저는 그 제안이 당시 제가 가졌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 초반 당시 학생운동을 하며 배우던 이른바 ‘제3세계 혁명’에 대한 글은 혁명 과정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혁명 이후에 그 나라들이 어떻게 됐는지가 매우 궁금했는데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된 답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홍콩에 사무국이 있는 국제 NGO에서 일하면 내가 그런 나라를 직접 가서 보고 확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대학 마지막 해인 1987년은 6·10 민주화 운동으로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의 물꼬가 터지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보다 긴 전망을 가지고 사회운동에 기여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제연대운동에 그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학 시절 가톨릭학생회 선배였던 고 한희철 열사의 영향도 적지 않았습니다. 1983년 서울대 가톨릭학생회 회장을 맡았었는데 군 입대 전 민주화운동 활동이 문제가 되어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때의 충격과 각성으로 못다한 선배의 사명을 누군가 이어서 수행해야 한다는 일종의 ‘부채의식’ 또는 소명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인권신장을 이룬 모범사례’로 평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인권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


솔직히 최근의 국내 민주주의와 인권 현실을 볼 때 모범사례라는 평가에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긴 안목에서 보면 과거70~80년대에 비해 민주주의와 인권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거 60~70년대 비슷한 또는 더 나은 환경에 있던 국가의 현재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과 비교해 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세대의 대다수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는 과거 수많은 선배가 흘린 피와 땀의 결과입니다. 국제사회 양심세력의 지지와 도움이 있었지만 한국의 민주화는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경제적으로 개도국이었던 또는 현재 비서구 국가 중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모두 병목현상 또는 적체현상에 직면해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국민들의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정치가 이를 채워주지 못하면서 많은 국민이 민주화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국제인권단체인 프리덤하우스, 국경없는 기자회 그리고 유엔 인권기구가 채택한 한국인권에 대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나 주변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체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적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21세기에 들어선 지 15년이 넘었는데 70~80년대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지도자가 적지 않고 과거의후진적인 정치문화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80~9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치적 차원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달성했지만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인 사회 경제적 차별의 철폐와 경제적 부의 균등한 분배 즉 경제적 민주화는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 및 집회와 결사의 자유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위협받으면서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서구와 개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의 집중과 빈부격차 즉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시민의 저항이 거세졌는데 이를 정부가 물리적으로 통제 또는 탄압하면서 시민들의 자유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일반적인 추세로 보입니다. 다시 어두웠던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감과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로 ‘N포세대’ 또는 ‘헬조선’과 같은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국이 과거 지원을 받은 만큼 개도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요즘 이 문제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잘 알다시피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 유럽의 많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민사회의 경우도 서구의 시민사회 또는 기독교를 통해 적지 않는 재정지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지원은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농민조합 또는 협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발전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현재 ‘한국의 개발경험 전수’를 명분으로 다양한 ODA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도 개도국의 빈곤퇴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원조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그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다수가 경제개발 중심이고 시혜적인 자선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우려가 높습니다. 한국사회가 현재 직면한 사회적 경제적 위기 즉 ‘헬조선’이란 표현이 담고 있는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높은 자살률, 일자리, 부패 등의 문제는 개발독재 즉 과거 군사독재 하에서 위로부터 강압적으로 추진된 압축적 경제성장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개발경험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원조 ODA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신데 ODA와 인권 또는 민주주의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ODA의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국제 기준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습니다. 유엔 권고 기준은 국민총소득(GNI) 대비 0.7%인데 한국은 약 0.14%로 OECD 국가 평균인 0.33%에도 훨씬 못 미치는 최하위권입니다. 양도 문제이지만 질이 더 문제입니다. 최근 ‘코리아 에이드’에 대한 국회 감사에서 지적되었듯이 보여주기 식 사업으로 현지에서 부작용이 적지 않습니다. 빈곤퇴치와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이 증진되는 사업모델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고민이 없거나 빈약합니다.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미국 정부에 군사독재정권에 원조를 중단하라는 주장을 했었는데 이제는 우리 정부가 일부 인권탄압이 심한 독재국가에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해외 원조에 힘입어 민주화를 이루었는데 현재 우리의 해외원조는 원조를 받는 국가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 때 설립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있지만 과거의 민주화를 기념하고 국내사업만 하지 국제사회 특히 개도국의 민주화에는 관심도 역량도 없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국가주도 산업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무시했지만 경제성장을 통해 성장한 중산층이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결과적으로 민주화로 이어졌다고 많은 학자가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60~70년대의 ‘개발독재’에서 80년대 후반부터 ‘민주적발전’ 모델로 진화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다시 과거 모델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국의 원조를 받는 대다수 개도국의 정치지도자가 한국의 과거 모델을 선호하고 한국정부도 이에 무비판적으로 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의 전제이자 결과라는 것입니다. 작년에 유엔 총회가 채택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민주적 거버넌스 즉 민주주의와인권이 16번째 목표에 정식으로 포함된 것은 이러한 교훈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제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경제개발은 배타적 선택이 아니라 함께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과제라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빈곤퇴치와 경제성장이 인권, 민주주의와 선순환하는 이른바 ‘한국형 ODA 모델’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인권재단에서 ODA에 대한 인권기반접근 연구와 교육사업을 전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내(남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보수보다는 진보가 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 왔습니다. 북한인권문제의 경우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데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국제인권단체 관계자를 국내에서 만났을 때 한국의 인권단체를 소개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북한인권만 하는 단체’ 또는 ‘남한인권만 하는 단체’라고 소개하곤 합니다. 남한인권과 북한인권을 동시에 같은 잣대로 참여하는 단체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제가 알기로는 90년대에는 적지 않은 이른바 진보적 또는 중도적 성향의 사회운동 진영에 속한 단체가 북한인권 관련 일을 했습니다. 당시 북중 국경지역에 직접 가서 탈북자 인권 상황을 모니터하고 지원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에는 이른바 보수적 시민사회에 속한 단체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두 진영 간에 탈북자와 북한의 인권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념의 차이가 너무 커서 공감대와 협력사업을 추진하기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분단과 통일에 대한 입장차이, 그리고 국내의 인권현안 특히 국가보안법 등 이념적 색채가 짙은 인권문제를 둘러싼 입장 차이가 부각되면서 간극이 더욱 벌어져갔습니다. 두 진영 모두 인권이란 단어를 사용했지만 의미하는 내용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달랐던 것입니다. 여기에 북한인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 일부 정치권과 종교세력이 개입하면서 더욱 악화되어갔습니다. 그래서 시민사회 일반 또는 보통 시민의 눈에 남한인권문제는 ‘진보’ 또는 ‘좌파’, 북한인권문제는 ‘보수’ 또는 ‘우파’라는 프레임이 고착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와 진보가 남한과 북한인권문제를 같이 논의하는 장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프레임의 고착화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인식 틀이 그렇다는 것이지 제가 알고 있는 현실은 그러한 프레임과 매우 달랐습니다. 제가 지금 만나고 있는 북한인권운동을 헌신적으로 하시는 분들 중에는 이른바 진보적인 분들이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본인을 보수 또는 우파로 규정짓는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거나 그런 이념적 구분 짓기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약 80대 20정도로 추측해봅니다. 크고 강한 목소리를 지닌 20%와 낮은 목소리로 묵묵히 일하는 나머지 80%.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 이념과 운동의 방향을 주도하는 20% 사이에서는 아직 열린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서로에 대한 상처와 불신이 크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인권과 민주화 운동은 보수 또는 우파가 주도한다면 남북화해협력과 평화운동은 진보 또는 좌파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자는 ‘반북’, 후자는 ‘친북’ 또는 ‘종북’이란 딱지가 쉽게 등장합니다. 둘 모두 북한과 밀접히 관련된 운동이지만 서로의 정치적 이념과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80%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진솔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같은 인권의 잣대로 남한과 북한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공동의 실천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그룹이 대화와 협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냥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하고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어떤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10년 전에 비해 북한인권운동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일부 국제인권단체에서도 주요 관심사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북한인권운동이 약할 때는 국제사회에서 ‘왜 남한의 전통적인 진보적 인권운동이 북한인권에 무관심하냐’는 비판적 질문이 자주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인권운동이 적지 않는 규모로 성장한 오늘날 국제사회는 역으로 ‘왜 북한인권운동 단체가 남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반 인권적인 입장을 지지하느냐’란 비판적 질문이 종종 제기되고 있습니다. 두 그룹 모두 유엔의 인권보고서와 권고안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유엔 보고서는 같은 ‘보편적 인권’의 잣대로 남한과 북한 인권문제를 다룹니다. 그러나 두 그룹은 자신의 이념에 부합하는 내용만 취사선택하거나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국제인권단체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다 동일하게 같은 잣대로 다룹니다. 그러나 이들은 남한 인권문제를 다룰 때는 ‘남한인권문제만 하는 단체’, 북한인권 문제를 다룰 때는 ‘북한인권문제만 하는 단체’와 따로 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절화가 심해지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남한이든 북한인권이든 한국 인권운동 전체의 신뢰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남한과 북한의 인권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시급히 요청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년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여야 합의로 되었다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사이에 공감대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10년간의 논란 끝에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었는데 제정 과정과 내용 모두 아쉬움이 많습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견해와 입장을 듣는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수반되었기를 바랐는데 다소 졸속적으로 처리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에서 심각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해 여야가 합의로 법을 제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북한인권법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민주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인권의 보편성 원칙을 법으로 공개적으로 확인했다는 면에서 긍정적입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인권을 넘어서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국회가 좀 더 전향적인 태도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은 인권의 원칙에 따라야 하는데 내용을 보면 관점과 용어사용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생존권’이란 용어 표현도 문제이지만 인권과 인도주의적 접근이 구분 없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인권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인권으로 모든 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인권문제는 인권의 원칙에 따라야 하는데 법안 내용을 자세히 보면 짜깁기 또는 ‘끼워 맞추기’란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현재 북한인권대화모임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목적과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2년 전부터 매달 한 번 북한인권 관련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와 토론을 하는 모임을 진행해왔습니다. 평균 15~20분이 참석하는데 북한인권 또는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 연구자, 정부나 국제기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입니다. 보통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가진 분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북한인권단체 활동가 이외에도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을 다룬 전문위원, 외교부, 법무부, 통일부의 북한인권 정책 담당자, 유엔 서울사무소 직원도 초청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대화 모임은 북한인권을 좁은 의미의 인권이 아니라 넓은 의미 즉 북한민주화,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 통일운동, 평화운동 등과 연계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또는 좌-우의 진영논리 구도에 갇혀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북한인권에 대해 지속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특정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 공감과 합의 수준을 높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매월 대화모임 이외에 반년에 한 번 지방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보다 깊은 토론의 장도 마련해 왔습니다. 그동안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 소논문을 모은 이슈브리프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시도로 보이는데 모임을 진행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네, 물론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의심 또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만나는 기회가 없거나 같이 사업을 한 경험이 없어서 다소 서먹서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임이 지속되면서 이런 형식과 내용의 대화가 시민사회에서 매우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분들은 한국 시민사회 또는 북한인권운동 전체에서 아직 매우 소수입니다. 현재는 소수이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80%에 속하는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재단에서 북한인권대화 모임 이외에 다른 북한인권 사업을 진행 중인 것이 있나요?


북한인권만 직접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 인권리더십과 세계시민 교육 차원에서 두 가지 사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2013년부터 시작한 모의 유엔 인권이사회 보편적정례검토(UPR)입니다. 서울대 인권센터, 휴먼아시아와 공동주최하는 대학생 대상 프로그램인데 북한인권을 중국, 일본, 남한과 함께 다룹니다. 둘째는 2015년부터 시작한 한국 인권평화토론대회입니다. 보통 두 개의 주제를 다루는데 올해는 인권과 평화에서 대북제재와 인권의 관계를 인권과 개발협력 주제에서 ‘코리아 에이드’와 인권의 관계에 대해 교차토론 방식으로 다룹니다. 재단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인권을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북한인권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이와 관련해 북한인권운동의 향후 방향과 과제를 제시해 주신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핵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폭력적 파국으로 마무리 될지 협상을 통한 비폭력적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지 현재로써는 예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보다 강력한 제재를 통해 이번에야 말로 실질적인 체제변화를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인권이 대북제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일부에서의 지적도 있습니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북한인권은 인권문제로 인권의 원칙에 따라 다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행동하고 보자는 ‘묻지마 접근’을 지양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까지 고려하는 성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한민주화와 인권운동, 인도적 지원과 개발협력, 통일과 평화운동 등 다양한 운동의 단체 간에 좀 더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소모적인 이념논쟁과 진영 논리를탈피해서 서로의 활동을 역할분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미국, 러시아, 유럽 등 한반도 분단 및 통일에 이해관계를 지닌 다른 나라의 시민사회 및 정책담당자와의 지속적인 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인권의 원칙과 인권기반 접근이 제대로 적용되면 다루는 내용과 맥락이 달라도 공감대와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시민사회 특히 인권운동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 제안을 부탁드립니다.


할 이야기가 많지만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인권침해의 정치·사회·경제적 구조와 조건의 변화에 따른 인권운동 패러다임의 변화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후퇴에 따라 과거형 즉 경찰과 검찰 등 국가권력에 의한 직접적 인권침해가 다시 증가하고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기업 등 비국가행위자에 의한 인권문제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권도시’, ‘인권경영’ 등 새로운 용어가 상징하듯이 전통적인 국가 외에서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지고 실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분야에서는 인권보호와 함께 인권침해의 사전 예방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즉 인권 친화적 문화가 중요합니다. 그래야 인권이 사회정치적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그러한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권이 피해자의 주장을 넘어 사회적 합의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경제적 비용 측면에서도 인권침해 예방은 고비용의 사후 대처에 비해 훨씬 효율적입니다. 이를 위해서 부단한 인권교육과 실천을 통해 인권감수성을 높여야 합니다.


둘째 국제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에 보수와 진보가 힘을 모아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운동을 국내와 국제로 구분하는 방식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국제인권단체가 남한과 북한인권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의 단체도 다양한 방식으로 국제인권운동과 외국의 인권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과거 국내에서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에 한국의 시민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아직 국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또는 ‘북한인권 또는 북한민주화가 우선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는데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지금 보수-진보가 힘을 합쳐 아시아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20대 국회에서 ‘국제민주주의증진’ 법안을 만들어 민주주의와 인권외교를 의제화하고 제도화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분단 극복이나 남북통일을 위한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통일이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문제이기에 많은 나라의 시민사회와 여론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른바 ‘합리적 보수’와 ‘열린 진보’ 진영에 속한 다수가 공감대와연대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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