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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24시] 반복된 국정감사 민폐


[김태진 | 전 공보처 전문위원]
국정감사, 구태의 악순환

20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첫 국정감사가 지난 9월 26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절반의 반환점을 돈 현재, 대체적인 평가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호통 국감’, ‘맹탕 국감’, ‘무책임 폭로전’ 등 과거부터 지적되어온 관행들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은 특허청장 자녀의 취업특혜의혹을 제기했지만 동명이인을 착각했던 것으로 밝혀졌고, 26일 백재현 의원은 행정자치부가 추심업체에 주민정보를 불법 제공하고 있다고 폭로했지만 위법사항이 없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피감기관의 무성의한 답변과 불성실한 자료제출 역시 빠지지 않는 국감 레퍼토리였다. 해마다 ‘국감 무용론’과 ‘상시국감 도입’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이 때문이며,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분리국감’까지 시도해 보았지만 ‘최악의 국감’이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의식과 제도는 변했지만 ‘호통’은 그대로

국정감사는 헌법 제61조에 근거하며,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는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다. 국감의 목적은 ‘입법, 예산심의, 국정통제라는 국회 기능의 효율적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행정부를 견제, 감시하는 국회 본연의 기능을 뜻한다. 국민 세금으로 편성되는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국정수행 과정에서 예산 낭비는 없었는지, 정책추진 과정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등을 점검하는 것이다.

최초의 국정감사는 1949년 제헌국회였다. 제헌헌법 제43조에는 “국회는 국정을 감시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제출받거나 증인을 출석, 증언, 의견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국회가 행정부를 포함한 정부기관을 감시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매년 행정부의 감시자로서 기능했던 국감은 1971년 8대 국회 당시 국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열리지 못했고, 이듬해인 1972년 유신헌법에 의해 삭제되면서 전면 중단되었다. 1980년 헌법에서 국정감사 대신 국정조사 권한이 추가 되었다. 이후 1987년 민주화 항쟁을 계기로 국회 권한 확대를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국정감사 기능도 부활하게 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부패를 야기하고 행정업무 진행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국감을 중단시켰는데, 독재 정권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국정감사가 눈엣가시였던 셈이다. 이 같은 한국 현대사의 경험은 국정감사의 기능, 즉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감시와 견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1988년 10월 5일, 16년 만에 국정감사가 부활한 이후 국정감사와 청문회는 웬만한 드라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헌법 제61조
①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②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7조(감사의 대상)
① 정부조직법 기타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
② 지방자치단체 중 특별시·광역시·도. 다만, 감사범위는 국가위임사무와 국가가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한다.
③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공공기관, 한국은행,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④ 제1호 내지 제3호 외의 지방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감사원법에 의한 감사원의 감사대상기관. 다만, 이 경우 본회의가 특히 필요하다고 의결한 경우에 한한다.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일해재단의 비리를 파헤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일약 스타가 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1997년 한보사태 때 김민석 전 의원은 무소불위 권력이었던 재벌 총수와 정면으로 맞서면서 국민들에게 ‘사이다’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권위주의의 잔재가 남아있었던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유하고 있던 재벌과 공공기관, 정부 등에 대한 국회의원의 질책은 국민들에게 ‘대리만족’이 될 수 있었고, 평소와 달리 국감장에서 ‘당하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꼈던 것이다. 오늘날 국정감사의 불행은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사회로 의식과 제도가 변화했음에도 피감기관을 대하는 태도, 호통치고 질책하는 의원들의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MS오피스는 왜 MS에서 일괄구매하나”

현행 국정감사의 문제점을 복합적으로 보여준 사례는 새누리당 이은재 의원의 ‘MS오피스’ 해프닝이다. 지난 10월 6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교문위 감사에서 이 의원은 MS오피스-한글 워드를 수의 계약한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는데, 이 장면이 ‘이은재의 황당 질문’이라는 내용으로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공개된 동영상에서 이은재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이 MS오피스와 한글 워드를 수의 계약한 점을 들어 업체와의 유착의혹을 제기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갤럭시는 왜 삼성에서만 파느냐’ ‘KTX표는 왜 코레일에서 구매했느냐’ 등 패러디 글을 유포시켰으며, 이은재 의원은 포털에서 당당히 실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소를 금치 못할 이 사건은 다음날 이은재 의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전모가 밝혀졌다. MS오피스와 한글의 경우 일종의 대리점인 ‘총판’ 들이 경쟁하며 판매권을 따내는 방식이며, 한글의 경우 MS오피스와 달리 서울 총판이 한 곳뿐이라 수의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이은재 의원의 해명 이후, 조희연 교육감은 자신의 잘못을 일부 시인하고 사과했고 이은재 의원과 합동점검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해명 과정에서 이은재 의원은 자신은 1983년부터 컴퓨터를 사용했다면서 결코 ‘컴맹’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소프트웨어 입찰 방식에 대한 질의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데서 발생한 ‘우문우답’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즉, 이 의원이 총판을 통한 경쟁체제라는 점을 인식했더라면 조희연 교육감이 ‘독점기업’임을 지적했을 때 오히려 조 교육감의 업무파악이 잘못돼 있음을 질책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쟁점인 ‘교육청이 학교운영비를 빼서 소프트웨어를 일괄 구매했다’는 주장도 학교 운영비와 별개로 서울시교육청이 관련 예산을 추가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또한 사전 확인 없이 진행된 질의로서 조 교육감이 제대로 답변했다면 오히려 이 의원이 머쓱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포된 동영상이 자의적으로 편집된 것이라 해도 둘 사이에 오간 대화를 보면 ‘동문서답’ ‘우문우답’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은재 의원은 “MS오피스를 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샀냐”고 질문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도 네티즌의 비아냥이 계속되는 것은 이 의원이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권위’를 앞세워 피감기관을 옭죄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답변은 듣지 않겠다는 태도, 피감기관의 부인에 호통이 더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이 의원의 경우,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에 ‘컴퓨터용 대형 팬’이 있다고 주장했다가 ‘실외기’로 밝혀졌던 전력이 있는데다 2009년 용산참사를 ‘도심 테러’, 야당 의원에게 ‘멍텅구리’라고 말하는 등 막말의 장본인이라는 점도 평가절하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제도’가 아닌 ‘사람’의 문제

해마다 국감 때가 되면 제도개선을 위한 제언들이 줄을 잇는다. 아예 없애버리자는 주장부터 상시국감 도입까지 각종 아이디어가 넘친다. 국회의 권위를 앞세운 무리한 증인채택과 자료요구는 피감기관의 피로도만 증가시키고, 20여 일에 불과한 짧은 기간 동안 수백 개의 피감기관을 다뤄야 하는 제도적 맹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거론되는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행 국정감사가 오명을 벗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원들의 ‘능력 부족’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사회 각 분야의 전문기술과 역량이 증대된 만큼 꾸준한 연구를 통해 신기술과 트랜드를 파악하지 않는 한 구체적인 질의답변이 불가능한 구조다. 더구나 피감기관의 공무원은 해당 업무의 전문가이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이 아닌가.

제도가 아닌 운용주체, 정당과 정치인의 문제다. ‘호통’과 ‘질책’으로 권위를 대신하려는 오만함, 보좌진이 써준 질의서를 읽기 바쁜 꼭두각시 의원들, 카메라를 의식한 돌출행동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제도를 시행해도 국감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피감기관의 권위주의적인 태도, 무성의한 답변 등도 반드시 시정돼야 하지만, 날카로운 질문과 대안 제시를 통해 피감기관 스스로 자세를 낮추도록 하는 역할 또한 국회의원의 몫이라는 점에서 정치인의 태도변화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또 다시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안타까운 결론이지만, 정당의 정책기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개선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즉 주요 이슈에 대한 사전 조정 및 역할 분담을 통해 필터링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소속 의원들의 개인 플레이에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당 주도의 팀플레이 전략을 구사한다면 보다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매년 ‘혹시나’ 했던 마음을 ‘역시나’로 접어야 하는 국민들의 허탈함을 이제는 제발 끝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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