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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대한민국을 지킨 우리 곁의 '영웅'을 기억합니다
순직 공무원, 의사자 추모사업 펼치는 ‘공익희생자지원센터’를 가다

[양정아 | 편집장 ]

지난 9월 9일 서교동 원룸 화재 당시 다급한 상황에서도 초인종을 눌러 이웃을 대피시킨 ‘초인종 의인’ 28살 청년 안치범 씨. 이웃들을 화마에서 구해낸 안 씨 자신은 정작 연기에 질식, 병원으로 옮겨져 사경을 헤매다 10여 일 만인 20일 새벽 숨을 거뒀다. 당시 언론을 비롯해 유명 연예인, 정치인들까지 앞 다퉈 그의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상에서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화제가 되는 등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 여 지난 10월 말 안 씨가 의사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신문의 단신 뉴스로만 스쳐 지나갔다. 뜨거웠던 추모 열기가 불과 한 달 새 시들어버린 것이다.


지난 10월 오패산 터널에서 사제총기 공격으로 경찰이 순직한 사건 역시 언론들은 총격범을 둘러싼 자극적인 보도에 집중했을 뿐 당시 사망한 김창호 경위의 희생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한 ‘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 기억에서 쉽게 잊히는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13년 출범한 ‘공익희생자지원센터’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예우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비영리민간단체이다. 이 단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일하다 희생된 경찰관, 소방관, 해양경찰관과 타인의 생명을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한 의사자를 통칭해서 ‘공익희생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공익희생자들을 기념하고 이들의 희생을 성숙한 시민사회 형성을 위한 밑거름으로 만들고자 하는 ‘공익희생자지원센터’를 찾았다.


양순철 ‘공익희생자지원센터’ 대표는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나 전쟁유공자,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되신 분들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고,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한 자산이 되고 있다. 이 분들에 대한 예우나 추모 사업 역시 국가 차원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그러나 국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국민의 안전을 위해 희생했던 경찰관, 소방관, 해양경찰관, 순직자 등 공익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에 대한 기념과 추모가 지속되지 못하면서 그 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쉽게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의 목숨을 살린다는 것은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사랑 중 가장 최고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민간 차원에서도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에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단체 설립의 배경을 밝혔다.


공익희생자들의 삶과 희생정신 기록으로 남겨


물론 지금도 국가 차원에서 공익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공익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다양한 형식의 기념행사들이 전국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고, 또 무엇보다도 일반 시민들이 그들을 영웅처럼 존중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은 멀다고 할 수 있다. ‘공익희생자지원센터’는 공익희생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가치를 나누기 위한 기념사업을 주로 펼치고 있다.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공익희생자의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하거나 전국에서 거리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공익희생자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들의 삶과 희생을 담은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합니다’라는 휴먼북을 발간했다.


양 대표는 “공익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그 분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가장 의미 있고 필요한 사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며 “이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어떻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타인을 구할 수 있는 선택을 했는지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5명의 대학생들이 최종 선발돼 공익희생자들의 유가족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지난해 11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많이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서울 시내 국공립 도서관 등에 배포됐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유가족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가족들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그 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때만 되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기자들의 일시적인 관심도 실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다른 측면으로는 유가족들도 이제는 새롭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자꾸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쩌면 상처를 더 키우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양 대표는 “유가족 분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고, 그래서 참여자들의 수도 예상보다는 적었다”며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도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 분들의 희생은 물론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는 그 분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공개적으로 추모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고귀한 가치를 나누는 일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공익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도 그 기록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 분들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유가족을 통해서만 그 분들의 삶이나 희생을 재조명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이 쉽지 않더라도 유가족분과의 만남은 소중하고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며 “자원봉사자나 참가 학생들 역시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순직 경찰관, 소방관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이 분들의 소중한 희생을 우리 사회가 잊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먼북 제작에 참여한 대학생 김혜정(고려대.24) 씨는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무래도 글을 쓰는 과정에서 유가족 분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며 “그런데 막상 직접 유가족들을 만나보니 저희 활동에 많이 공감해주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다. 그 분들이 공익희생자들을 오랜 세월 동안 추억하고 기리는 모습에 감명 받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익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편도혁(국민대.27) 씨는 “공익희생자의 가족 분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분명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이고당연히 유가족들도 좋아하시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막상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시거나 힘들어하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며 “그래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보니 마음의 벽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그 분들의 이야기를 사회에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활동에 참여한 황세호(안양대.27) 씨는 “센터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공익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뉴스로만 접했을 뿐 그분들의 희생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했다”며 “청소년들과 함께 대전 현충원 봉사 활동을 다녀오는 등 직접 공익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나니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주변에 더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게 됐다”고 했다. 이어 “1년 중 하루라도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공익희생자의 날이 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김 씨 역시 “공익희생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추모가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순직자, 의사자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음에도 언론이나 사람들의 관심은 그때뿐인 것 같다. 그분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휴먼북 발간과 같은 사업이 지속됐으면 좋겠고,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박물관과 같은 기념 공간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익희생자 추모 행사 민간 참여 통해 확대돼야


올해에는 공익희생자 에세이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국민들이 직접 공익희생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총 300편의 작품들이 응모에 참여했고, 이 중 20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돼 모음집으로 출간됐다. 공모전 수상자들과 함께 하는 북 콘서트가 지난 10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기도 했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들, 잊히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 이란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한 문지영 씨는 에세이를 통해 2014년 광주 소방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故)이은교 소방사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문 씨의 남편은 소방관으로서 첫 발령지에서 함께 근무하며 이은교 소방사와 인연을 쌓아왔다고 한다. 뒤늦게 학업과 일을 병행할 정도로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컸던 이은교 소방사는 결혼을 한 달 앞둔 예비신랑이기도 했다. 문 씨 부부는 이 사고 이후 한동안 슬픔과 죄책감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부부 나름의 방법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삶을 감사하게 이어나가겠다는 마음으로 이 공모전에도 참가하게 됐다고 한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정아 씨는 이날 북 콘서트에서 “일본 유학시절에 주변의 일본 사람들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항상 이수현 씨에 대해 얘기해 놀랐다”고 얘기하면서 의사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소감을 밝혔다. 지난 2001년 당시 일본 어학연수 중이던 이수현(당시 26세) 씨는 도쿄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졌다. 일본에서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씨가 숨진 날을 기념해 추모 행사를 열고 있고, 그의 희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곧 개봉될 예정이다. 박 씨는 또한 “공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순직자들의 경우 마치 그들이 목숨을 걸고 나서는 것을 의무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누구도타인을 위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그들을 영웅처럼 미화해서 그들의 죽음을 합리화하기 보다는 그들의 존재와 삶 자체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최근 5년(2011~2015년)간 경찰관 37명이 순직했고, 공무 중 부상을 입은 경찰관은 1만90명에 달한다. 소방관의 경우 28명이 순직하고, 1,632명이 상해를 입었다. 소방관은 화재진압 현장뿐 아니라 응급구조와 생활안전 활동 중에도 순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해양 경찰관은 순직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 과정에서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에 의해 지정되는 의사자 수도 지난 5년간 86명을 기록했다. 이러한 공익희생자들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에 따라 보상이 이뤄지고 있으며 각 소속 기관의 주도로 추모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양 대표는 추모 사업이 일회적이고 단편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며, 그들의 희생정신을 우리 사회 공동의 자산으로 삼기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하는 추모행사나 기념사업들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익희생자지원센터’는 추모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들이나 일반인들과 함께 매년 2~3회 정도 현충원 묘역정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 대표는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여준 공익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감사해 하는 것은 배려와 존중의 선진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의사자들은 직무 외의 활동을 통해서 목숨을 달리했기 때문에 사회적 예우가 오히려 더 좋아야 한다. 의사자들에 대한 보상 체계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말했다. 그러면서 의사자들에 대한 추모 사업 역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전국 각지에 의사자 기념비가 있기는 하지만 장소가 제대도 알려지지도 않았고 찾기도 어려워 그들의 희생이 헛되이 잊히고 있는 실정”이라며 “개별 사안마다 보상도 이뤄지고 추모도 이뤄지지만 그들의 희생이 좀 더 의미 있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익희생자지원센터’는 향후 그들의 희생정신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양 대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었던 그 사람의 삶의 배경이나 태도, 가치관 등을 기록으로 남겨서 우리 후대들이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하고 배울 수 있는 자료로 남기고 싶다”면서 “의사자들에 대한 전체적인 현황이나 기록을 백서와 같은 형태로 제작하는 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유가족들에 대한 처우나 보상에 대한 연구, 부상자들이나 생존자들에 대한 심리 치료 방안 모색, 민간이 참여하는 추모사업 확대 등을 통해 공익희생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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