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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논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총정리


[홍진표 | 본지 편집인]

10월 말 경 본격적으로 노출된 이 사건은 12월 9일 국회의 탄핵의결로 1차 결론이 났고 이제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이후 사법적인 차원만 하더라도 특검의 수사, 사법부의 형사 재판, 헌재의 탄핵 심판이 남아 있다. 정치적으로는 탄핵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이 불가피하고, 탄핵 찬반으로 입장이 양분된 새누리당의 재편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보수세력 전반의 재구성도 필연적이다.


박 대통령이 오랜 기간 보수의 아이콘 같은 역할을 했고, 여당은 물론 보수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자파세력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보수 유권자도 탄핵을 분기점으로 뚜렷이 양분되었다. 돌아보면 이 사건은 애초부터 결국 탄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 박 대통령의 저항과 야당의 정략적 소극성에도 불구하고 피플파워에 의해 탄핵의 길로 간 것이다. 87년 6월항쟁에 이은 30년만의 국민의 대궐기는 이후 한국정치에 장기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충격적인 사건에 뒤이어 이제 엄청난 정치적 격변이 시작된 시점이라 이 글의 ‘총정리’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실은 정리 자체는 가능하지 않다. 여전히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로 드러나고 있지만, 다행히 이 사건의 기본 윤곽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러도 될 만큼은 밝혀졌다고 믿는다. 이 글에서는 최대한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데 중점을 두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어떤 대응이 있었는지 밝혀보려고 한다. 우리가 겪은 피해와 상처를 넘어 다시 앞으로 나가기 위한 몇 가지 제언도 담아본다. 이번 호 시대정신에서는 ‘권두논단’, ‘파워인터뷰’, ‘판례로 본 세상’ 등 여러 글에서 이번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중복된 내용을 피하고 살피려고 한다.


1. 사건의 발단


이 사건은 처음에는 ‘최순실 게이트’로 불렸는데, ‘박근혜 게이트’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통령이 직접 깊숙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관되지 않는 선에서 벌어진 그동안의 대통령 측근비리와 이 사건은 확실히 차별화 된다. 이 사건의 뿌리를 추적해보면 40년 전인 19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박근혜와 최태민은 1975년 3월 처음 만났고, 그 질긴 인연에서 이 사건은 잉태된다.


박근혜의 최태민 일족과의 관계는 그가 1998년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가끔 관심사로 떠올랐고, 2007년과 2012년의 대선 도전시기에 집중적으로 조명되기도 했다. 이때는 최순실 보다는 1998년부터 국회의원이 된 박근혜의 보좌관 최태민의 사위 정윤회가 주목을 받았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대통령의 이른바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문제되면서 정윤회가 부각되었다. 2014년 1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었던 박관천이 작성한 정윤회가 비선실세라는 보고서가 2014년 11월 세계일보에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문건 유출 수사과정에서 박관천이 ‘우리나라의 권력 서열은 최순실이 1위, 정윤회가 2위이며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나, 당시에 이를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2016년 7월 경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화여대 학내사태와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이하 ‘재단’)사건이 터지면서 문제의 최순실이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되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 선정을 둘러싼 이대 학내사태에 대한 2016년 9월 말 국정감사에서 정유라의 입학 등 비리가 거론되면서 최순실이 등장하였다. 2016년 7월 26일과 8월 2일 TV조선은 대기업들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모금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보도를 한다. 이후 국정감사와 언론의 추가 취재를 통해 최순실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10월 24일, JTBC <뉴스룸>은 태블릿 PC를 근거로 최순실이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표 하기 전에 받았다고 단독 보도하여 최순실이 비선실세임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 후 언론들의 추적이 집중되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연설문 수정뿐 아니라 인사개입, 이권개입, 기업대상 갈취 등의 행각이 밝혀졌다.


2. 주요 쟁점


<박 대통령의 주도성>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은 최순실의 국정개입과 비리사건에서 박 대통령이 한 역할과 그 동기이다. 친박세력 중에서는 심지어 최순실도 음모의 희생자로 보는 사람도 있으나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도 최순실의 비행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으니 이런 억지 주장까지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12월 16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사건 답변서에서 국회의 ‘탄핵 소추사유’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전면부인 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는 탄핵 사유가 되는 사건들이 실재했다는 것은 다 인정하면서도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증거는 대통령이 최순실의 요구에 따라 최순실이 저지른 범죄에 공범으로 가담했다는 증거를 말한다. 이후 구체적으로 살피겠지만, 문제의 사건들이 만약 존재했다면, 박 대통령의 개입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나아가 대통령 개입의 대부분은 최순실의 요구, 최순실의 이익과 분리시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국회가 최순실의 재판 결과를 굳이 기다리지 않고도 탄핵소추를 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답변서에서 주장하는 증거란 대통령이 시인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증거라는 객관적 용어를 빌렸을 뿐 ‘나는 부인한다!’는 다른 표현이다.


박 대통령은 재단 설립에 관하여 여러 차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이라고 해명했다. 공익의 간판을 내걸고 기업의 돈을 갈취하여 퇴임 전후에 다른 목적으로 쓰려고 했다는 시각에 대한 반론인데 해명이 사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반복해서 밝힌 내용이라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 이 입장을 견지할 것이 확실하다.


박 대통령이 선의로 재단 설립을 추진했으며, 결국 최순실에게 속았다는 말을 믿는다고 하면 과연 대통령은 책임이 면제되는 걸까? 검찰 공소장에는 대통령이 재단 설립의 아이디어를 내고 그 실질적 운영을 최순실에게 맡긴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는 박-최 두 사람 외엔 알기가 어려운 사항이고 최순실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라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최순실이 아이디어를 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여부와 무관하게 지금까지의 해명에 따라 대통령은 이후에도 구상은 본인이 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재단 설립을 직접 구상하고, 그것도 선의로 했다고 가정해도 최순실이 사유화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가 없다. 그 정도 또한 부주의나 방임이 아니라 그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통상 정부 주도의 공익재단은 부처의 관리 하에 두면서 특정인의 사유화로 인한 변질을 방지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국가가 주도해 온 대표적 분야인 문화 및 스포츠의 진흥이라는 목적을 내걸면서도 처음부터 정부 통제 밖의 민간재단을 구상한 것이다. 나아가 청와대나 관련 부처의 타당성 검토과정도 없이 세간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추진하였다. 검찰의 공소장에 의하면 심지어 대통령은 재단의 설립시기, 임원 선정,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의 비율 등을 최순실의 뜻에 따라 안종범 전 경제수석에게 지시하여 관철시킨다.


대통령이 매사를 챙긴 재단의 설립과정을 보면 결국 최순실이 실소유자인 재단을 만들기 위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다른 가능성은 생각할 수가 없다. 공익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하더라도 특정 개인의 사유화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면서, 대통령이 지위를 이용하여 대기업들의 모금을 강요했다면 그 자체가법 위반이다. 대기업이 모금에 응한 이유가 무엇이든 대통령의 책임은 면제되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강압에 못 이겨 했다면 직권남용이나 강요에 의한 갈취가 되는 것이고 대가의 거래가 있었다면 뇌물이 된다. 이때 대가성의 여부는 구체적으로 입증이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모금에 응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사건 초기에 ‘대기업들의 자발적 출연’이라는 주장을 했고 헌재 답변서에서도 이를 반복하고 있다. 애초 대기업들이 이런 재단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발적 협의를 통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발성은 성립할 수가 없다. 오히려 자발적이었다면 대가를 바랬다는 의미가 되어버린다. 강력한 관치경제 시스템에서 대기업 오너들이 대통령과 수평적인 협의가 가능하다고 믿으라는 것은 기만이다.


공익목적은 정관 등에 내세우거나 의도를 주장한다고 해서 인정될 수는 없다. 장기간의 운영과정에서 입증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재단들이 공익목적으로 운영되리라는 주관적 믿음을 가질만한 요소는 개인적으로 믿는 최순실이 실소유자라는 것 외에는 전혀 없다. 재단이 사유화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어떠한 장치도 없었고, 오히려 대통령은 그런 장치들의 완전한 제거를 바라는 최순실의뜻(대통령 자신의 뜻일 수도 있다)에 충실하였다. 본래 민간재단은 출연금을 낸 측에서 일정한 결정권을 행사하는데, 대통령의 지시로 기업들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쯤해서 우리는 한 가지 중대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대통령의 공익목적 추구가 진심이었다면 최순실 자체가 공익을 보증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아니라 오로지 최순실을 믿고 공익 일탈을 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려 800억에 달하는 재단들의실소유자가 되어 철저히 사익을 배제하려면 적어도 상위 5% 이상의 높은 도덕성이 요구될 것이다. 최순실은 그 정반대 편에 있는 부류로 밝혀졌다.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공모를 부정하기 위해 결국 자신의 사리분별 기능은 망가져 있다고 자인해 버렸다.


대통령이 사람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자체가 완전히 마비되어 있어서 최순실을 사심 없는 사람으로 보았을까? 이는 대통령이 40년 이상 정반대의 허상을 보았다는 것인데 믿기가 어렵다. 오히려 대통령이 최순실의 말이라면 무조건 다 듣는 특별한 관계를 상정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그래서 나는 재단들의 구상 자체가 최순실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추정한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이 최순실의 재단 구상이 공익에 도움 된다고 보았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최순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북핵위기 대응에 버금 갈 만큼 중대 국정과제처럼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재단들의 설립은 공익목적을 앞세워 변명할 여지가 있지만, 최순실이 주도하고 차은택이 일부 가담한 대기업 광고 수주, 포스코 광고자회사 강탈 시도, 현대차 납품 청탁 등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대목에서는 공익 비슷한 것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검찰의 공소장에 의하면 최순실과 차은택은 2015년 10월 경 플레이그라운드라는 광고회사를 급조해 KT와 현대차의 광고를 수주 받아 약 15억의 이익을 취하였는데, 최순실의 요구에 따라 대통령이 직접 안종범에게 지시하여 실행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은 안종범을 시켜 이들의 KT 광고 수주를 돕기 위해 최순실이 추천한 사람을 KT의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강제한다. 더 막장도 있다. 대통령은 최순실이 포스코광고계열사인 포레카를 강탈할 수 있도록 안종범에게 시켜 포스코 회장에게 압력을 가하도록 한다.


이 건들은 안종범이 설사 미쳤다고 해도 대통령의 지시가 없으면 독자적으로는 이런 더러운 일을 할 이유가 없다. 안종범이 최순실과 직접 관계를 가진 흔적이 전혀 없고 대통령을 통해서만 비로소 이 범죄 가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그동안 대국민담화에서 재단들에 국한해 공익명분으로 변명하고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 이유는 명백하다. 최순실의 광고회사가 대기업 광고를 수주하는 것을 도저히 공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대통령의 헌재답변서는 이 대목에서 동문서답과 ‘중소기업 애로사항 해결’, ‘대통령의 정당한 업무수행’이라는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왜 하필 그 중소기업들이 최순실의 소유거나 최순실이 추천한 기업이었는지 놀라운 우연이다.


광고회사를 앞세운 최순실의 대기업 갈취에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을 보면 역시 최순실이 요구하는 것은 그 부적절 여부를 따지지 않고 다 실행했다고 보아야 한다. 대통령의 막강한 힘과 청와대의 공적 시스템을 최순실의 사욕추구에 의식적으로 동원한 것이다. 이 대목은 아무리 대통령이 지각이 없더라도 사익의 추구라는 걸 모를 수가 없기 때문에, 재단들과 달리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속았다고 변명할 여지도 없다.


최순실이 박 정권 4년차인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재단 설립 등 큰판을 벌려 불법적으로 거액의 돈을 챙기려고 한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물론 최순실이 그 이전까지 청렴하게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이후 더 밝혀지겠지만, 지인이 사주인 ‘KD코퍼레이션’의 현대차 납품 청탁의 경우 2013년 12월부터 시도하는 등 집권초기부터 여러 이권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점은 임기 후반 들어 결코 은밀하다고 보기 어려운 매우 노골적 방법을 사용하면서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면서 권력에 취해 판단능력이 흐려져 들키지 않을 것으로 오판했거나, 사건화되기 전에 해외 재산도피 계획이 있었을 수도 있다.


거액의 재산이 있는데도 탐욕을 멈추지 않은 이유도 미스터리다. 흥미롭게도 과거 최태민 또한 돈이 될 만한 건이면 가리지 않고 개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국가기관 보고서들을 보면 대한구국봉사단, 육영재단 등의 공금횡령, 위 단체 기부금 중간착복, 금융권 융자알선, 국회의원 공천 및 장성 진급 등 인사청탁 대가 수수, 소송개입, 각종 인허가 및 기업 납품 개입 등이 있다. 당시는 생소한 금융다단계를 뺀 가능한 모든 사기 및 갈취 목록을 볼 수 있다. 최순실의 행각은 최태민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정신과 의사들의 몫이겠지만, 사기와 갈취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중독증이 의심된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


이 사건의 근본적이고 집중적인 의문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에 집중된다. 사람이 누군가를 절대적 혹은 맹목적으로 믿고 그의 말을 다 따르는 관계는 극히 예외적이라 오히려 정상적 관계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 대통령은 10월 25일 1차 담화에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시절의 깊은 인연이라고 해도 절대적 믿음을 갖지는 않기 때문에, 이는 제대로 된 해명이 될 수가 없다. 사과가 3차례나 거듭되었지만 과연 무엇을 사과하는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나중에 더 소상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어 절대적 의존이 가능한 몇 가지 가능성을 추측해볼 수밖에 없다.


첫째, 대통령이 최순실을 과거 최태민처럼 종교적 혹은 영적으로 신뢰했을 가능성이다. 어쩌면 가장 믿고 싶지 않은 경우이지만, 이번 사태를 가장 단순하고도 쉽게 설명 해주는 가설이기도 하다. 이 가설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최순실이 최태민의 딸이기 때문이다. 최태민이 희대의 사기꾼이고 사이비 종교인이었다는 사실은 이번 기회에 여러 매체를 통해 다시 확인되었고, 친박세력도 이 대목을 정면으로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이 글에서는 굳이 다루지 않겠다.


박 대통령이 20대 시절 사이비종교를 매개로 최태민에게 정신적으로 거의 지배를 당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그 관계가 최태민이 죽는 1994년까지 지속됐다는 사실도 국가기관의 보고서들과 관련자들의 증언에서 확인되었다. 통상 정신적으로 미숙한 청년시절에 사이 비종교, 그릇된 이념, 다단계 같은 사기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국에는 20대 때의 미망에서 벗어나며 자괴감으로 인해 문제되는 인연과 단절하고 증오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최태민의 딸을 비롯한 그 일족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것은 최태민과의 인연에 회의를 가져본 적이 없다는 증거이다. 이런 문제들은 지속 아니면 단절 둘 중의 하나만 있을 뿐이고 중간이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월간조선과 2002년 4월호 인터뷰에서 정치적으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육영재단)전횡해서 뭐 나쁜 일 한 거 있었어요?’ 등 시종일관 최태민을 옹호했는데, 진심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어릴 때부터 사회와 단절되어 지냈고, 부모의 비극적 죽음을 거치며 극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그 방어기제로 생긴 의존성을 생각할 수 있다. 최태민이 죽고 나자 그 대안으로 비록 주술적 차원의 의존은 아니지만 최순실을 정신적 불안에 대한 의존제로 여겼을 수 있다. 최순실이 일종의 신경안정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의존증은 중독성을 가지기 때문에 지속성을 갖는다.


셋째, 최태민과 최순실에게 결정적인 약점을 잡혀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인데 박 대통령이 둘을 신뢰하는 태도가 상당히 신념화 된(형제들은 물론 측근들이 최 씨 일족을 거론하면 관계를 단절하는 반응을 보여 왔다) 수준이라고 볼 증거들이 많아서 매우 낮아 보인다. 대통령이 2013년 8월 정유라 문제에 공개적으로 개입한 유명한 사건을 보면 최순실 일족의 일을 챙기는 것을 당연한 삶의 일부라고 여기는 듯하다. 넷째, 사이비종교에 빠진 것도 아니고, 신경안정제 같은 의존증도 아니라면 사리분별력과 판단에 치명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다. 사실 이는 모든 가능한 경우를 따지기 위해 생각해 본 것일 뿐이며, 분별력의 문제로 최태민, 최순실을 고결한 인격자이고 현자로 장기간 착각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음모론적 접근>


페이스북 등 온라인 공간이나 대통령 옹호 집회 등에서 이 사건이 언론이 만들어낸 음모의 산물이라는 친박세력의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부 언론만 나섰다면 모르지만, 모든 언론이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이를 광우병사태 같이 허구나 조작이라고 본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이른바 조중동 등이 2017년 3월로 예정된 종편 재승인 심사라는 이해관계 때문에 그들 표현에 의하면 ‘광기’의 대열에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메이저 언론사들이 이런 이해관계 하나로 모든 기자들을 로봇처럼 허구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상상이 놀랍다.


종편이 아닌 공중파나 뉴스전문채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광우병 사태 당시에는 이번과는 달리 언론사의 보도방향이 찬반으로 갈렸다는 사실을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엄청난 경쟁 속에서 언론의 보도들이 쏟아지면서 오보들도 있었지만, 사건의 방향에 영향을 줄만한 건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청와대가 운영한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사이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최순실用’이라는 침대 3개의 진실”, “‘길라임’은 병원 간호사가 만든 가명”, “‘대통령 대포폰 사용’ 발언”, “청와대 경호실이 최순실 집을 경호?”, “최순실, 대통령전용기로 해외순방 동행?” 등이 오보 목록이다.


북한 정권의 공작에 의한 결과라는 극단적인 음모론도 있다. 북한 정권이 한국사회에 그런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면, 그동안 한국은 어떻게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었을까? 북한이 갑자기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을 조종하는 전능한 능력이 생길 수 있을까? 이런 정도면 망상증 수준이라 논박할 가치도 없다. 촛불집회 등으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북한에게 좋은 일이라서 나쁘다는 주장도 있다. 근본적 원인제공자가 박 대통령이니 대통령을 탓해야 옳다. 박 대통령이 안보문제에 투철하다고 알려져 왔으나 이번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과연 진심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이번 사태가 결국 대통령의 정치적 반대 세력이 만든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보편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한 대통령의 비리가 아니라 이념적 대립이나 정치적 갈등이 사건의 숨은 본질이라고 보려고 한 것이다. 공상 수준조차 넘어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사건초기에 쉽게 믿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압도적 다수 국민들의 분노 폭발과 적극적 행동, 박근혜-최순실의 특수관계와 최순실의 전횡 및 비리 증거들의 축적, 모든 언론의 일치된 보도 방향, 국가기관인 검찰의 판단 등을 계속 외면하는 것은 합리적 사고기능의 정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물론 이 중에는 신념이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음모나 조작으로 몰아가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모론은 거대한 세력의 가정(신비적 수준), 반대 정보의 의도적 회피(정보 업데이트 거부), 기존 믿음을 강화시키는 정보 편식(때로는 반대정보도 편의적 해석을 통해), 구체성 대신 단순 도식화, 국가기관에 대한 편의적 불신(유리할 때만 신뢰)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들의 행태가 그렇다.


사건전모를 회피하고 한두 가지 의혹에 집중하는 특성에 따라 이들도 문제의 태블릿PC에 전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이제 와서는 태블릿PC의 진실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이 주제는 검찰 기소내용, 나아가 탄핵사유와 거의 무관해져버렸다. 태블릿PC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만 사용된 것으로 최순실이 국가기밀을 제공받았다는 범죄에만 관계된 것이고, 사건의 핵심이자 2015년 이후 벌어진 재단 설립, 광고 제공 압력 등과 완전히 무관하다. 대통령은 헌재 답변서에서 검찰이 공소장에서 밝힌 46건의 문건유출 자체는 부인하지 않고 있다. 연설문 외에는 본인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반론만 펴고 있다. 그렇다면 음모론자들의 믿음대로 만약 태블릿PC가 최순실이 연설문 등을 받은 수단이 아니더라도, 다른 경로가 반드시 있었다는 것이고 사건의 실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들은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이 사건이 노출된 결정적 발단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음모의 시작’인 이것이 음모로 규명되면 모든 사건이 음모로 입증된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건이없었다면 전체 게이트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인지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기는 어렵다. JTBC 보도가 즉각적인 대통령의 최순실 연설문 수정 사실 인정을 끌어내어, 이 사건의 노출 속도를 매우 빠르게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0월에 이르면 폭발직전의 화산처럼 이미 다른 매체에서 이와 전혀 별개인 재단문제 등이 보도되거나 추적되고 있었다.


JTBC가 최순실이 아닌 타인의 그것에 다른 자료를 심어서 보도했다는 태블릿PC 음모론의 극단도 있다. ‘세상에 가능하지 않은 일은 없다’고 보는 음모론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놀랄 일도 아니다. 음모론의 치명적인 허점은 자유로운 개인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데 있다. 과거 천안함 피격사건의 경우 구체적인 증거를 논하기 전에 조작설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것이었다. 이를 조작하려면 집단이 이를 공유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우리 수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언론기관과 검찰 등이 집단적으로 단 한명의 내부 고발자도 없이 조작의 완전범죄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래서 망상이다.


국가기관인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한 대통령과 친박세력의 태도는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국 검찰이 오랜 기간 정치적 독립성 시비를 겪어왔지만, 대통령이 직접 개입되고 탄핵이 거론되는 중대 사안에 대해 없는 죄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상상하기 어렵다. 아무리 여론의 압력이 있다고 하지만, 재판 과정은 물론 특검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증거도 없이 기소했다는 수준으로 불신하고 매도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대통령은 과거 최태민에 관한 국가기관 보고서를 불신하고 최태민 개인의 변명을 더 믿었는데, 이번 사건에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과연 우연인지 궁금하다. 5선이라는 장기간의 국회의원 활동과 4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 사람이 국가기관을 이렇게 쉽게 불신한다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국가의 개념이 무엇인지 의문을 낳게 한다. 만약 국가기관은 쉽게 사유화되고 특정권력에 의해 사유화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본다면 이는 왕조시대의 발상이다.


음모론자들은 태블릿PC를 중심으로 사건이 폭로된 초입에 눌러앉아 더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검찰의 기소 내용 중 중요대목이자 막장에 해당되는 최순실의 플레이그라운드 광고회사가 대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받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나서서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KT와 현대차의 회장들을 압박하게 한 건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대통령도 세 차례의 대국민사과에서 이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있는데 의도적이라고 보인다. ‘본인은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는 말이 이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는 데 명시적으로는 이 건을 거론하지 않아왔다.


음모론자들은 대통령 지지도가 4%까지 떨어지고, 주말 촛불시위 참여자가 계속 늘어난 것에 대해서도 언론, 야당의 거짓 선동이나 심지어 북한 정권의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내 주변만 관찰해 보더라도 광우병, 세월호 등의 거리시위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촛불시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거나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닥치면, 단순하고도 신비한 어떤 존재를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들은 평소 현 정권에 반대하던 사람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언론과 지인들로부터 주로 정보를 얻었겠지만, 그렇다고 사건 내용을 아주 자세히 분석하고 법률적 지식을 동원해 뚜렷한 판단까지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는 아닐 것이다. 과연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선동에 휘둘려서 그저 군중심리에 빠져서 촛불시위에 나왔다고 폄하할 수 있을까? 이번에 국민들이 매우 빠르게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비판을 유례없이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상식의 힘이라고 믿는다. 사회관계를 해 본 상식적 인간이라면 아무리 친분이 두터운 둘도 없는 친구관계라 하더라도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전방위적인 개입은 애초 불가능하고 무엇을 제안하려고 해도 명분이나 합리성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다. 비록 우연이지만 최순실이 저급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후에 대통령이 그와 특수관계라는 것이 밝혀진 것만으로 국민들이 극한 분노에 빠진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면 차라리 어떤 음모를 생각해야 할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거듭된 해명이 국민들의 분노에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는 사실은 지지도 추이와 시위 참가자의 증가에서 증명되었다. 이는 단순한 분노의 증대가 아니었고, 갈수록 대통령의 정신세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사실여부와 무관하게 국민들 다수는 최순실이 대통령의 조종자였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물론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의 진실이 다른 데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국민들의 이런 믿음을 억지로 주입된 허구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가설이기 때문이다.


3. 박 정권의 평가


<사설 비선 정치>


최순실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기 전에도 박 정권이 국가시스템을 너무 쉽게 무시하거나 축적된 민주정치의 규칙에 무지하다는 비판은 보수층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 명쾌하게 그 원인을 설명하기 어려워 의문부호만 남긴 일들이 많았는데, 이번에 많은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었다. 박-최 공동정권이라고 부를만큼 최순실의 절대적 존재가 확인되면서, 퍼즐조각들이 완성되듯이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대통령이 외부인사의 조언을 듣는 걸 시비할 수는 없다. 외부의존도가 지나치면 공적시스템이 무력화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최순실은 간헐적 조언수준이 아니라 상설적 지위가 보장되었다. 나아가 놀랍게도 청와대 비서진이 동원된 공적시스템의 보좌까지 받게 하였다. 비선실세가 최순실이 아닌 현자라고 하더라도 공적시스템을 무력화할만한 수준이라면 심각한 사태이다. 아무리 현자라고 해도 한 개인이 국정전반을 다 알 수도 없고, 오류를 걸러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은 연설문 감수뿐 아니라 인사, 정책은 물론 대통령의 건강, 패션까지 전 방위적 개입이 허용되었다.


대통령이 장관은 물론 청와대 수석까지 대면보고를 거의 허용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사고와 더불어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가 주 원인이었을 것이다. 결정에 이르는 의논상대가 따로 있기 때문에, 대통령은 이들과 어떤 결론에 이르는 토론을 할 수가 없으며 오로지 일방적 지시만을 했던 것이다. 널리 알져졌듯이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의 공개된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기관대상 방침 제시는 물론 대국민 메시지를 대신하였다. 여성동아의 12월 7일자 청와대 조리장 A씨의 증언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은 박정권 출범 초기 매주 일요일 청와대에 들어와 ‘문고리 3인방’ 안봉근·이재만·정호성 비서관과 회의를 했다”고 한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의 대통령 모두 발언을 과연 누가 작성하는지 그동안의 궁금증 일부가 풀렸다.


비정상적인 인사정책 또한 최순실의 존재로 인해 일부 해명이 가능해졌다. 최순실 비선실세 정치는 인사정책에 가장 큰 폐해를 끼쳤을 것이다. 최순실의 인사개입은 검찰 수사에서는 범죄로 기소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김상율 전 교문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 외에는 아직 그 전모가 다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순실이 추천하면 검증절차가 무시되면서까지 관철되고, 직접 추천하지 않은 중요 인사 결과도 미리 알렸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인사 지연, 예측 가능성이 무시된 인사, 부적격 인사의 상당부분이 최순실의 존재로 인해 벌어진 비정상일 것이다.


이른바 3인방으로 대표되는 측근정치 또한 최순실과 직접 연결된 문제임이 확인되었다. 역대 대통령시절 모두 속칭 문고리 권력이 있었지만, 3인방은 단순히 지근거리로 획득되는 권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지위에 있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3인방을 절대적으로 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 정권의 인사정책 중 예스맨들의 중용도 비판대상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비선정치 시스템에서는 예스맨이 가장 적격이다.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오로지 순종만을 미덕으로 아는 사람들은 지시가 없으면 일을 안 하는 수동적 자세를 갖게 된다.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조선 및 해운 등의 구조조정과 같이 돌발적 사태나 선제적 조치가 필요한 일이 닥치면 그 무능이 드러나게 된다. 직업공무원들 내에서는 박 정권처럼 일하기 편한 시절이 없었다는 말이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즉 대체로 일을 안 하면 좋기 때문이다.


비선실세 구조가 국가정책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실히 드러난 것은 거의 없다. 일각에서 사드배치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최순실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나 근거는 없다. 최순실이 국가정책을 살필만한 식견이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최순실이 연설문 수정을 한 결과를 보더라도 그의 지적 능력이 높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마 대통령은 최순실의 손을 거치면 안심이 되어서 연설문을 맡긴 것 같다. 다만 대북정책은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다. 박 정권은 김정은 정권이 조기 붕괴될 것 같다는 희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각종 통계나 북한 현지 방문자의 증언은 오히려 경제 활성화와 정권 안정 상황에 가깝다. 국정원 등 대북정보 보고기관이 최순실이 예언했다는 이른바 통일대통령의 기대에 맞는 정보만을 올렸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


<전근대적 정치>


박근혜 정권이 비선실세 정치를 했다는 그 자체가 전근대적 요소이다. 오랜 기간 발전시키고 검증되어 온 근대적 공적 시스템을 무시하고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최순실에 대한 신뢰의 동기가 주술적 차원이라면 과학을 경시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다. 최순실의 영향과 무관하게 박 대통령 자신이 대단히 전근대적이고 권위주의적 사고에 깊이 젖어 있다는 증거들은 많다. 정부부처 관료나 청와대 참모들을 대하는 태도, 여당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장악하려는 시도, 정치적 반대의사에 대한 불관용, 국민과의 관계에서 상호소통 보다는 일방통행 선호 등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이 전근대적 사고에 빠진 것은 오랜 사회적 단절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박 대통령이 1980년 이후 장기간 사회와 호흡하지 못한 기간에 한국사회는 민주화라는 거대한 격변을 겪었고 이후 모든 분야에서 빠른 변화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언론이나 책을 통해서는 사회변화를 읽고 있었겠지만, 피상적인 이해에 그쳤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대통령이 사실상 여당의 총재라는 인식은 이미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이를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민주화의 성과로 검찰의 독립성이 점차 개선되고 있었는데, 박 정권 하에서 일거에 후퇴되고 말았다.


근대화의 양대 축은 산업화와 민주화이지만 여기에 관용정신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념, 정견, 종교 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인데, 일원화를 추구하고 다른 요소를 폭력적으로 배제하던 전근대성과 뚜렷이 구분되는 요소이다. 박 대통령은 심지어 여권 내에서조차 이견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친위세력은 우대하고 비판세력은 억압하는 충격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박 정권은 각종 수단을 동원해 시민단체를 관제화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마치 당연한 일처럼 자행했다. 관용 또는 공화주의에 반하는 대표적 정책은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일 것이다. 역사해석에 대한 차이를 무시하고 국가의 이름을 앞세워 특정 정권이 역사해석을 독점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어떤 명분으로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당화 될 수 없다. 나아가 가능하지도 않다. 박 정권은 가능하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가 추구하던 근대화에 역행하는 길을 걸었다는 사실도 비극적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급진적 민주화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산업화 추진, 근대적 공적 시스템의 구축, 미신 타파와 과학 중시, 공과 사의 구분 등 근대화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비록 임기 말에는 시스템을 무시하는 일탈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당시 사회 수준에서 볼 때 매우 근대적인 사고의 소유자였다. 반면 박 대통령은 이 시대 한국사회에서 전근대의 낡은 잔재를 대변하는 가장 후진적인 위치에 있다.


4. 탄핵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안이한 대응>


대통령이 무려 세 차례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를 했지만, 매번 국민들의 눈높이와는 동떨어지고 객관적 상황에도 부합되지 않는 행보였다.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검찰을 장악하고 있었으니 적당히 모면할 수 있다고 오판을 했는지, 아니면 시간을 벌면 비판세력의 과잉에 따른 역풍이나 다른 초대형사건 등에 의해 반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는지, 여하튼 요행을 바랐을 수 있다. 그러나 일련의 경과가 말해주듯이 애초부터 이 사건은 그냥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일국의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비루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의지해 국정개입과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는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대통령이 크게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이한 대응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는 도저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가정이라 배제하고 싶다. 대통령은 ‘재단들의 자금조성이 대기업의 자발적 모금이었다’, ‘최순실이 임기초반에 잠깐 연설문 수정만을 도왔다’는 등 여러 차례 국민 상대로 명백한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사건 전모가 밝혀지면 매우 곤란해진다는 판단은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아가 대통령은 거국내각 해법이 대두되자 일방적 총리후보 임명으로 국회에 공을 떠넘기거나, 나중에는 사임의사를 밝히면서도 국회의 합의라는 조건을 내세우는 등 정치적 술수로 의심될 행동으로 일관하였다. 이처럼 해법의 일부만 수용하는 책략은 아마 하야나 탄핵 등 임기중단을 피하고 반전도 기대하는 집착에서 나온 것 같은 데, 역시 통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른바 친박세력들은 피플파워의 강력한 위력에 매우 둔감한 정서를 가진 것 같다. 결국 대통령도 결과적으로는 탄핵을 자초하는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는데, 하야를 시사하면서도 결국 선택하지 않은 것은 역사적으로 오점을 더 한 것이라 안타깝다. 하야는 개인적으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킬 수 있고,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3차 담화는 대통령이 즉각 2선 후퇴를 포함하여 명확한 시한을 제시하는 하야 선언의 마지막 기회였다. 한편 친박세력을 중심으로 하야는 헌법위반이라는 주장이 유포되기도 했다. 법치국가에서 법에 금지되지 않는 것은 허용된다는 원칙에 따르면, 헌법에 하야 금지 조항이 없는 만큼 이는 궤변이다. 상식적으로 하야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 민주주의 사회의 헌법에 금지조항을 만든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1969년 프랑스 대통령 드골이 사임할 때, 닉슨이 1974년 탄핵을 앞두고 사임했을 때 그것이 헌법위반이라는 논의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하야가 위헌이라면서, 임기단축 개헌주장이 대두되었다. 헌법의 본문은 고치지 않고 부칙에 현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넣자는 기상천외한 개헌 발상이다. 법에서 부칙은 반드시 본문의 변화에 따라 부수적으로 바뀌는 것인데, 일국의 헌법을 부칙만 고치자는 것은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친박세력은 하야를 반대한다면서 ‘강제하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이들은 국민의 압력에 밀려서 하야하는 걸 강제하야라고 보는 것 같다. 갑자기 세상이 무상해졌다거나 집무를 계속하기 어려운 병이 들지 않는 한 하야는 오직 정치적고립에 빠져서 결국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하는 것이다. 강제하야란 신군부의 압력에 의한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 같은 정치적 협박이나 무력행사에 따른 것만이 해당된다.


<정치권의 당리당략>


이 글에서 심지어 하루에도 여러 차례 입장이 춤을 추기도 했던 정치권의 세부적인 동향을 다 평할 수는 없다. 대체적인 흐름을 보면 정치권은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광장정치의 뒤를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이 사태가 벌어졌다고 정치권의 고착화된 후진성이 갑자기 혁신될 리는 없다. 피플파워의 뒤를 따라가는 추수적 행동을 넘어 특히 정국 주도성을 가지게 된 민주당은 정치적 계산을 지나치게 밝히는 태도를 보였다. 대선을 앞두고 이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주로 대선의 유불리가 주판알을 굴리는 기준이 되었다.


초기에 정치권은 대통령의 2선 후퇴의 방법으로 거국내각으로 의견을 모았는데,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대통령의 2선 후퇴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현실을 간과한 해법이었다. 하야로 가는 중간단계의 2선 후퇴가 아니면 불안정한 약속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태도였다면 과도적 해결책이 되었겠지만, 정국 반전의 기대를 단 한 번도 버린 것 같지 않다. 특히 문재인 전 대표는 상당기간 탄핵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이재명 성남시장의 추격을 허용하였다. 대권고지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다는 이해관계로 인해 이런 태도가 나왔을 것이다.


박 정권이 버티면서 국민의 지탄을 더 받는 것이 나쁘지 않고, 한편으로는 기각이나 탄핵역풍 같은 위험요소를 겁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정국은 대통령의 신뢰나 권위가 회복 불가능하여 탄핵소추를 통해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켜 국정공백의 장기화를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한 접근이 비판을 받자 광장정치에 끌려가는 데 급급해졌고 대통령의 하야카드가 나왔을 때, 유연한 대응을 어렵게 하고 말았다. 만약 국회가 2선 후퇴를 전제한 2월쯤의 조기하야를 촉구하고, 이를 대통령이 거부했을 때 탄핵을 선택하는 수순을 밟았다면 탄핵의 명분이 더 강화 되었을 것이다. 탄핵은 대통령을 단죄해 역사적인 정의의 기준을 만든다는 점에서 정당성과 의의를 갖는다. 다만 하야에 비해 친박세력의 일정한 결집계기를 만들어 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정치권의 대응을 주로 규정한 것은 대선이 임박했다는 사정이었다. 만약 총선이 멀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새누리당 친박은 와해되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선거의 중요성의 순서는 총선, 지방선거 다음에 대선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대선에서 야당이 되는 것이 자신의 국회의원 연임에 유리하면 야당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새누리당 친박이 민심을 외면하고 독자세력화를 꾀한 건 아직 총선이 3년 이상 남았다는 여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국회의원 자리는 보장되고 이후 차기 총선이 다가오면 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여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5. 일보후퇴 이보전진


<전근대 잔재의 퇴출>


우리는 비록 평화적, 통상적 과정은 아니지만, 이번에 한국사회의 전근대적 잔재를 일소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대통령과 추종집단이 정권을 쥔 세력이라서 국민항쟁과 탄핵이라는 비상한 대응이 불가피하였다. 민심에서 확인되었듯이 국민다수는 적어도 공적영역에서는 근대적인 기준을 확고히 지지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빠른 속도로 근대화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전근대의 잔재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한국사회의 부패가 주로 연고주의, 공사구분의 취약, 법치주의 경시 의식에 집중되는 것은 전근대성이 끈질기게 남아 있다는 증거이다. 이념 갈등에 있어서 공존을 허용하지 못하고 덮어놓고 종북으로 몰거나, 극우나 친일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행태도 반공화주의적인 전근대적 후진적 의식이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 중 조상묘의 이장, 옷 색깔 선택, 집무실 책상 위치 선정까지 주술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친박세력은 이념적으로는 극우를 지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극우개념에 대해 일각에서는 폭력을 지향하고, 국수주의적 경향을 띠는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나타난 극우의 전형적 모습을 상정하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가 이런 유럽형과 결코 동일하지는 않지만 한국사회에서 ‘극우’ 외에는 보수주의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며 극단적인 경향을 띠는 우파를 구분하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초기에 친박은 뚜렷한 이념이 없었지만, 집권 이후에는 종북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확장시켜 정치적 반대파를 종북으로 모는 매카시즘 경향, 역사교과서 국정화에서 드러난 반공화주의적 경향 등을 공유해 왔다. 본래 우파는 반(反)좌파를 동력으로 삼기 때문에, 극단화되면 사회통합을 저해하게 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미·중 간에 균형을 잘 유지해왔는데, 재야 친박세력들이 강한 반중정서를 갖고 있어서 향후 친박세력은 친미반중 노선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은 헌재 답변서에서 탄핵사유를 전면 부정하고 ‘억울하다’는 방향을 택하였다. 이는 끝까지 저항할 것이며, 비록 소수가 되더라도 정치세력으로 생존해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통령이 헌재에서 끝까지 다투면 탄핵기각을 끌어낼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지는 알 수 없다. 대통령의 투쟁선언은 객관적으로 보면 헌재의 심판 결과보다는 이후 친박 정치세력의 유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대통령이 답변서에서 일부라도 잘못을 시인했다면 음모론에 매달리던 친박세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탄핵기각을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조직한 친박세력의 결집에 얼마나 고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대통령과 친박세력은 하나의 운명체로 저항의 길로 나선 것이다. 전근대세력의 퇴출은 끈기가 필요한 긴 투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의 일탈>


이번 촛불집회는 시종일관 평화적 방법을 견지하고, 이념구도를 넘어 광범위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세계의 주목과 최상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의결 이후 본래의 정신을 훼손하는 흐름이 나오고 있다. 탄핵이라는 헌법 절차를 밟았으니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민주적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헌재 압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 황교안 권한대행의 퇴진 등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일탈은 감정적 격앙만이 아니라 촛불집회의 주최단체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성향과 직접 관련된 것이라 더 우려스럽다. 퇴진행동 내에는 구 통진당계열, 민노총이 대표하는 귀족노동운동 세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탄핵 이전의 촛불집회에서도 이번 사태의 핵심에서 벗어난 이석기 석방, 사드배치 반대, 노동시장 개혁 저지같은 자기 이해관계 중심적인 구호를 들고 나왔었다. 촛불집회의 일탈시도는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겠지만, 국민들이 단합된 힘과 노력으로 만들어 놓은 역사적 성과를 훼손할 것이다. 나아가 헌재 압박의 경쟁을 벌이는 친박세력의 결집을 더 촉진하는 부정적 기능도 우려된다.


<내각제 개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대통령제의 치명적인 결함이 재확인되었다. IMF 구제금융을 뛰어넘는 충격을 준 이 사태가 문명화된 우리사회에서 벌어질 확률은 극히 낮았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친박세력의 전근대성은 우리사회에서 결코 주류가 아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는 잔재이기 때문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다수 국민들이 단호한 정권 반대의지를 공유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실체를알았다면 도저히 수용될 수 없는 비주류 경향이 대통령제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집권을 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비극적 요소이다.


대통령을 평소에 견제하기도 어렵고, 임기보장제로 인해 부적격이 발견되어도 해결이 매우 어렵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투명사회가 되었다지만 대통령 후보의 검증도 구멍이 나게 되어 있다. 이미 대통령제의 한계는 드러나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대통령제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그 끝을 보여주었다. 불행하게도 이제 한국에서 대통령제의 아름다운 퇴장의 길은 막혀버린 것 같다. 내각제라고 가정하면 박 대통령이 적어도 한 번은 수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당 내부에서 항시적 견제를 받는 수상이 비선정치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만약 시도하여 사건화되면 즉각 퇴진시키면 된다.


국민들 내에서도 대통령제의 근본적 결함을 느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이번 기회가 내각제 개헌의 적기로 보여 진다. 그러나 문재인 중심의 민주당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고 그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큰 걸림돌이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현행 헌법에 따라 치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워 차기 총선에 맞추어 임기단축을 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이 나온다면, 대선 이후 개헌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다.


<80년대 세력의 청산>


박 대통령과 친박세력이 60~70년대의 전근대적 세계관을 대표한다면, 우리사회 선진화의 또 하나의 걸림돌은 80년대의 세계관에 머물고 있는 세력이다. 80년대에 마르크스주의나 주체사상에 빠졌던 다수가 이미 사고의 변화를 겪었는데, 여전히 그 시점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정치권, 노동계, 학계 등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특히 민주당의 이른바 친문세력으로 집결되어 있다. 개인별 편차가 있지만, 이들의 주장이나 정서를 관찰해보면 80년대처럼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수준은 아니지만 계급주의, 노동중심주의 등 시대변화의 지체현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4차산업 혁명기라는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낡은 극좌이념에 의존하여 국가경영을 한다면 또 다른 비극이다. 이들은 이번 사태에서 박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퇴행성을 감추고 있는데, 이번에 시대착오적인 극단의 좌성향도 퇴출시켜야 국가의 대혁신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좌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사회발전의 해법을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차이의 존중과 열린 자세 나아가 도그마에 갇히지 않는 합리성을 지향해야 한다. 염려스러운 것은 80년대 세계관에 여전히 갇혀 있는 세력들은 정치의 현장에서 친박세력 못지않게 포용이나 연대를 거부해왔다는 사실이다.


개헌이 어렵다는 전제 하에 만약 이번 대선에서 80년대 세력이 집권한다면, 한국사회는 다시 한 번 퇴행과의 지루한 투쟁에 빠져들 것이다. 한국의 운명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너무 가혹하다. 역사상 유례없는 피플파워가 발휘되고 있으나 시대의 급변 속에서 엄청난 도전과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온갖 낡은 요소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 일대 혁신을 이룰 수 있기를 절실히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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