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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 "대통령제는 100% 실패…내각제 개헌이 시대적 과제"
중도세력 주도로 정치개혁 시도하는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을 만나다

[양정아 | 편집장]

헌정 사상 두 번째로 국회에서 탄핵안 표결이 이뤄진 12월 9일. 찬바람이 부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에 휩싸였다. 탄핵안 가결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과 취재진들이 뒤섞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게 될 역사적인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탄핵안 표결을 몇 시간 앞두고 박형준 전(前) 국회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여의도에 위치한 ‘새한국의 비전’ 사무실을 찾았다. 박 전 사무총장은 이미 투표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앞으로의 정치개혁 과제들을 담담히 풀어냈다. 그는 “국민들의 75%가 탄핵을 원하는 만큼 국회나 헌법재판소가 그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이제 정치권이 할 일은 구 발전모델이었던 ‘87년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찬성 234, 반대 56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이미 민심의 방향은 뚜렷해졌다. 최순실 게이트로 시작된 최악의 국정 농단 사태는 국민들에게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안겨주었고, 우리가 어쩌다 이런 정치지도자를 갖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곱씹어 보게 했다. 그러나 부패와 측근비리로 얼룩진 지난 정권들의 초라한 퇴장을 생각하면 결국은 제도의 문제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박 전 사무총장은 “87년 체제의 모든 한계와 문제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났다. 87년 체제는 민주화를 통해서 형성된 체제이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는 구조적으로 한계를 갖는 체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의 체제에 내재되어 있던 권위주의적인 특성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정치는 모든 것이 대통령을 만드는 정치로 귀결된다. 우리가 6명의 대통령을 만났지만 그 6명의 대통령이 전부 대통령이 되는 데 집중을 했지 대통령이 돼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 했다”며 “대통령을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는 순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권력의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과정에서 측근 비리가 생기고 측근들의 권력남용이 생기고 비선실세가 생기는 것이다. 경중은 있지만 비선실세나 측근정치의 문제는 계속 일어났고, 이번이 그 끝판왕인 셈”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관저에 홀로 마치 절간 생활 하듯이 했다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정무수석이 11개월 동안 독대 한 번 못하고 비서실장이 1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했다는 것은 측근비리, 비선실세 얘기를 하기 전에 대통령 자신이 국정운영 시스템을 무시해 버린 것”이라며 “철학과 비전, 국정운영 능력이 부족한 대통령을 뽑은 국민의 비극이자, 인물의 비극”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선 대통령은 이 사태가 온 것에 대해 회피하려고만 했지 온당하게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없었다”며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실 야권 지도자들이나 야당들도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 문제는 그것대로 다루더라도 국정을 안정화, 정상화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는데 그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대통령 만들기 정치에 익숙한 한국 정당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제도개혁으로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도의 실패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느냐가 초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개혁의 방안에 대해서는 “6명의 대통령이 6번의 실패를 가져왔다면 그것은 100% 실패한 제도다.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인해 정국불안이나 사회적 갈등이 굉장히 심하고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불안정한 체제”라며 “개헌을 한다면 적어도 의회와 행정부가 지금처럼 대립하는 모델이 아니라 의회와 행정부가 대부분의 정책 영역에 있어서 유기적으로 상호책임 하에서 굴러갈 수 있도록 하고, 운영에 있어서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아니라 합의제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이 내각제를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각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미성숙의 근본 이유가 대통령제에 있다고 한다면 내각제 요소를 더 많이 도입해서 정당도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한 달 넘게 평화적으로 진행된 촛불시위는 낡고 부패한 정치세력의 퇴장과 함께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을 시대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박 전 사무총장은 “친박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낡은 극우세력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라고 한다면 친노, 친문은 다른 의미에서 폐쇄적인 세력이다. 폐쇄적인 세력이 나라를 이끌고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제3지대론이 나오는 이유는 다양한 세력들이 이종교배를 해서 우리 사회에도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세력이 집권을 하는 모델을만들어보자는 취지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록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와 철학이 다르더라도 우리나라의 현실과 상황과 미래를 볼 때 좌우를 떠나서 꼭 추진해야 될 정책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며 “지금은 이를 위해 정치 현장에서 직접 쓰일 정책을 만드는 일과 공동의 플랫폼을 만들어 연합세력을 만드는 정치적 조정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사무총장은 19대 국회 때인 2014년 9월부터 지난 6월까지 1년 9개월간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언론인, 학자 출신 정치인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사회특별보좌관을 지내는 등 다양한 국정 경험을 갖고 있다. 현재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주도해 만든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새로운 정치질서 구현과 개혁 과제의 합리적인 실행을 위한 촉진제 역할의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먼저 최근의 국정 혼란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사태가 야기된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우선 이번 사태는 제도의 비극이자 인물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도의 실패이자 인물의 실패다. 제도의 비극 또는 실패라고 말한 것은 87년 체제의 모든 한계와 문제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는 민주화를 통해서 형성된 체제이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는 구조적으로 한계를 갖는 체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체제에 내재되어 있던 권위주의적인 특성을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체제를 권위주의적 발전국가 모델이라고 한다면, 권위주의만 조금 완화했을 뿐이지 발전국가모델이라고 하는 체제의 특성은 그대로 보전 되어왔다. 발전국가모델의 특성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모든 힘을 집중해서 갖고 그중에서도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해 경제 발전과 나라의 운영을 책임지고 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해서 경제성장에 쏟아 붓고 국정운영의 모든 자원들을 대통령과 행정부가 일정하게 독과점하는 그런 체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민주화 이후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됐고, 대통령이나 정부를 일정하게 견제하기 위한 민주적 운영원리를 도입했지만 관료제와 민주주의의 충돌이 불가피한 체제이다.


또한 87년 정치체제 자체가 적대의 정치 구조를 생산했다. 하나는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과의 대립인데 대통령 중심제가 갖고 있는 고유한 문제이다. 지역주의에 기초한 이분법적 정치의 영향으로90년대 이후로는 사실상 양당제 하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립, 영남과 호남의 대립, 젊은세대와 고령세대 간의 대립이 나타났다. 이런 적대의 정치구조는 정치적 타협이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는 문제로 귀결되게 만들었다. 대통령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5년 간 모든 권력을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는 라이센스를 얻은 것처럼 행동하고, 대통령 권력을 얻지 못한 정당이나 사람은 그 대통령을 실패한 정권으로 만들어야 다음에 자신의 찬스가 온다는 것 때문에 극단적인 대립과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정치가 반복되어 왔다. 그런 문제들이 적대의 정치로 집약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정치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모든 것이 대통령을 만드는 정치로 귀결된다. 정당의 경우도 정상적인 정당이라기보다는 선거캠프로서의 기능이 주되게 자리잡아왔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기형적이고 기능도 미숙하다. 뿐만 아니라 선거 주기도 맞지 않아서 매년 전국선거가 있을 때마다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정책의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우리가 6명의 대통령을 만났지만 그 6명의 대통령이 전부 대통령이 되는 데 집중을 했지 대통령이 돼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대통령을 만드는 과정이 어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는 순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권력의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은 권력이 갖는 공적 성격에 대해서 충분히 자기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권력의 공적 성격과 권력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유화 욕망 사이에서 그 경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대부분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유혹에 빠져버린다. 그 과정에서 측근 비리가 생기고 측근들의 권력남용이 생기고 비선실세가 생기는 것이다. 경중은 있지만 비선실세나 측근정치의 문제는 계속 일어났고, 이번이 그 끝판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상당히 잘 갖춰진 국정운영,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을 비롯해서 각 분야가 민주화를 통해서 성장하고 발전했기 때문에 제도를 잘만 운영해도 극단적인 실패는 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런대로 나라를 이끌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쭉 해온걸 보면 이런 발전된 국가시스템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야말로 무엇 때문에 대통령이 됐는지도 의문스럽게 만드는 그런 양상들이 너무 많다. 대통령이 관저에 홀로 마치 절간 생활 하듯이 했다는 건 결코 자랑이 아니다. 대통령의 24시간이 얼마나 바쁜 시간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도 모자란데 그것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무수석이 11개월 동안 독대 한 번 못하고 비서실장이 1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했다는 것은 측근비리, 비선실세 얘기를 하기 전에 대통령 자신이 국정운영 시스템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과 비전, 국정운영 능력이 부족한 대통령을 뽑은 국민의 비극이자, 인물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어떻게 느끼셨나요?


87년 체제 하에서는 대통령이 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갇혀 있고, 특히 전반기 3년 동안 일을 못하면 역사적으로 일을 하나도 못한 대통령으로 평가될까봐 그 3년 안에 모든 프로젝트를 제시하고밀어붙이게 되어 있다. (지난 시기 대통령들이) 다 그랬다. 그런 과정에서 야당은 반대하고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이 안 되니 결국은 대립하다 일방적으로 법안들을 강행통과하려는 모습들을 반복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 시기에는 선진화법이 있어서 그런 강행통과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조성됐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훨씬 더 의회를 존중하고 설득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 오히려 이전 대통령들보다도 의회를 더 무시했다. 의회에 야단을 치는 자세를 취하는 일종의 제왕적 대통령상을 보였다. 옛날 왕정문화의 잔재라고 보는데 대통령이 마치 나라의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가장 올바른 생각을 가진 것처럼 전제를 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지시와 명령을 내리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런 발상이 여러 번 반복되지 않았나. 국회가 행정부의 과잉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예를 들어서 법안을 넘어서는 시행령을 행정부가 만들어 시행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법안을 만들었는데 이것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 했다는 것은 대통령이 우리 국정시스템에 대한 철학,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87년 체제는 심하게 말하면 관료독점 체제다. 우리나라는 예산도 정부가 다 짜고 법안도 사실 정부가 주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 정부나 관료사회가 얼마나 많은 규제 권한을 갖고 있나. 규제 권한 자체가 권력이다. 우리 삶이나 시장 속에 행정부의 지배력이 곳곳에서 관철되어 있다. 과거에는 효율성을 위해서 필요한 시기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개방적이고 다원화되고 복합화 된 사회에서는 정부나 또는 행정부가 그런 과도한 힘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과도 안 맞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행정부 우위체제를 민주화 하려고 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행정부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부나 대통령이 국정운영을하니까 의회와 마찰을 더 일으키게 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서 대통령이 야당 의원이든 여당 의원이든 비공식적인 자리를 만들어서 설득하려는 노력을 본 적이 없다. 친박 의원들을 한두 번 불러 식사했다는 것 외에는 그런 적이 없다. 대통령제를 선택한 전 세계 90여 개의 나라 중 그나마 성공한 모델이라고 하는 미국의 경우 의회에 강력한 견제 권한이 있고, 대통령도 의회를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의회에서 의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적인 장치 때문이다. 사법부의 독립적인 역할을 보장해 삼권분립을 지키면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인사나 예산, 법안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는 기본적으로 수직의 시대가 아니라 수평의 시대다. 수직의 시대가 기존의 발전국가체제라고 한다면 이제는 수직의 시대를 수평의 시대로 바꿔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는 수직의 시대를 더 가파른 수직의 시대로 만들려고 하는 경향들을 보여 왔다는 게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촛불시위를 보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광장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대단히 긍정적으로 본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결국 국민들이 항거에 나섰을 때 대한민국 체제가 바뀌었다. 48년 체제를 63년 체제로 바꾸는 데 4.19혁명이 결정적 전기를 마련했고, 유신독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부마항쟁을 비롯해서 민중항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군부 쿠데타에 의해 다시 한 번 좌절이 됐지만 잠시 시간을 지연했을 뿐이고 87년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면서 87년 체제를 만들어 냈다. 이번 촛불혁명은 87년 6월 민주화항쟁이나 광주민주화항쟁, 4.19혁명과는 그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민주화 된 이후에 이뤄진 민주항쟁이기 때문에 비폭력, 평화, 광장민주주의 내에서의 다원성과 민주성이 돋보이는 항거라는 측면에서 진화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촛불집회라는 형식은 세계 사회운동사에서 한국의 고유브랜드로 독창적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촛불집회에 나온 수많은 시민들의 질서정연한 모습, 자신의 요구를 평화적으로 관철하면서 동시에 광장민주주의를 축제로 승화하려고 하는 모습들은 분명히 세계 사회운동 역사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모범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런 에너지를 성숙한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싶은데 하나는 수백만이 모여드는 광장 민주주의 시대가 SNS시대, 네트워크 시대,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SNS를 통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공감을 하고, 모인다는 점에서 지금의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국민들이 직접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언제나 열려 있다. 과거 대의제 민주주의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많은 수가 직접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접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도 계속 필요하지만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투영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보고, 이번 광장민주주의를 그런 새로운 실험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과거의 촛불시위, 특히 2008년의 광우병 시위의 경우 일부 세력들이 급진 과격한양상으로 몰고 가 결국 폭력시위로 변질되서 국민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평화적 성격이 계속 이어지지 못 하고 일부 세력이 폭력적인 시위 또는 너무 급진적인 주장으로 이끌어가려고 하면 그 내부에서 분화가 일어나 동력이 굉장히 약화될 것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긍정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점은 조심해야 한다. 또 그 가운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번 광장민주주의가 축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일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놀이와 문화로서의 성격이 있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괴롭고 고통스러운 대상이 아니라 즐겁고 희열을 갖다 주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가 그런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라는 것은 지겹고 공작과 음모가 난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광장으로 끌어내서 즐거움과 놀이와 축제로 연결하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고 정치라는 게 재미있는 것이구나, 내가 주권자로서 얼마든지 기능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국민들에게 정치교육의 장으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오늘 국회에서 탄핵 표결이 이뤄집니다. 결과와 관계없이 탄핵 과정에서 국회나 여야 3당이 제 역할을 했다고 보십니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막스베버가 얘기했던 것처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잘 구현해야 한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나 자기 직업으로서 정치를 하려고 하면 그것은 정치꾼일 뿐이다. 반면 자기의 비전, 정책 등을위해서 열정을 바치는 것이 신념윤리다. 신념윤리만 너무 강한 사람들은 신념에 대한 무조건적 돌진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수단의 적절성이나 과정에서의 책임에 대해서 소홀히 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책임윤리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책임윤리라는 것은 일단 자신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은 결국 국민들을 대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삶과 국가운영에 관해서 매 순간순간마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보면 책임윤리라고 하는 측면에서 볼 때 정치인들이나 정당들이 대단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우선 대통령은 이 사태가 온 것에 대해 회피하려고만 했지 온당하게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없었다. 공직자라는 것은 아홉을 잘해도 하나를 잘못하면 하나를 잘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온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시스템을 농단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다. 그걸 안 함으로써 탄핵이라고 하는 형태로 강제적인 책임을 부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실 야권 지도자들이나 야당들도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환경을 보자면 경제위기는 물론이고 외교안보 면에서도 미국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새로운 정책기조를 가진 대통령이 들어섰고, 중국과 일본의 관계도 최근 썩 좋은 게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도 풀어야 하고, 북한은 저렇게 계속 사고뭉치로 행동을 하고 있고, 처해진 환경의 모든 곳에서 위기가 오고 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국민들의 삶의 질이 악화되고 양극화나 격차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면 이 과정을 관리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책임윤리를 가지고 접근해야 했다.


처음 이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이 책임총리를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빨리 국회에서 책임 있는 논의를 통해서 책임총리를 세워야 했다. 대통령 문제는 그것대로 다루더라도 국정을 안정화, 정상화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그 책임을 다 방기한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 대통령에 대한 불신도 굉장히 강하지만 야당에서 ‘대통령은 탄핵 된 후에 바로 물러나라’ ‘황교안 총리 체제는 같이 탄핵받은 것이다’ 이런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니까 골수 야당 지지층 빼고는 지지 범위가 늘어나지 않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권력의 정치, 대통령 만들기 정치에 익숙한 한국 정당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제도개혁으로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제도의 실패, 인물의 실패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제도의 실패를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느냐가 초점이 되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는 데, 집권을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다 폄훼하는 이런 태도를 가져서는 나라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탄핵안 가결 이후에 4~5개월동안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만일 제도개혁으로 승화시키지 않고 대통령만 새로 뽑고 만다면 달라질 것은 없다. 지난 6번의 대통령도 다 실패했는데 새로 뽑힐 대통령이라고 성공할 확률이 어디에 있나. 더구나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집단이 또 권력을 잡는다면 경중은 있겠지만 비슷한 일이 또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책임 있는 정치적 지도자들은 대한민국의 87년 체제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숙의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숙의를 통해서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와 제도를 바꾸는 시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아예 개헌논의나 제도개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봐야한다. 이 책이 나올 때는 논의가 상당히 진행 됐겠지만 탄핵 이후에는 정치적 전선이 두 개로 이뤄질 것이다. 하나는 이 시기에 개헌 논의를 하느냐, 안 하느냐. 또 하나는 대통령 선거 구도를 어떻게 짤것이냐이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재도개혁 논의를 우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헌안에 대해서는 국회와 국회 안팎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쳐 일찍 된다면 다음 대선을 개헌 이후에 치룰 수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다음 대통령이 집권 1년 안에 논의된 개헌안을 중심으로 해서 확정을 하고 새로운 개헌안에 따라 임기를 단축한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정도까지는 진전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개헌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100% 완벽한 제도는 없다. 10~20%의 낮은 확률을 가진 제도를 새로운 시대적 조건에 맞춰서 50~60%의 성공 가능성이 있는 제도로 바꾸는 것을 개혁 또는 혁신이라고 한다. 아니면 혁명을 해야 하는 데 우리가 혁명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알다시피 6명의 대통령이 6번의 실패를 가져왔다면 그것은 100% 실패한 제도다. 전 세계에서 대통령제를 택한 90개의 나라 중에 성공한 나라가 없다.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연구한 로버트 달이나 후안 린츠같은 저명한 정치학자들이 경험적 연구를 통해 밝혀낸 것은 대통령제는 필연적으로 이중권력을 낳기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으로 인해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어서 정국불안이나 사회적 갈등이 굉장히 심하고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불안정한 체제다. 멕시코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6년에 한 번씩 신이 바뀐다.” 6년에 한 번씩 대통령을 뽑기 때문이다. 대통령제가 미국에서는 특수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적용이 됐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대통령제는 안 맞는 점이 많다. 특히 시대 자체가 수평적인 시대로 바뀌고 다원화되고 복합적이고 글로벌화 됐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굉장히 중요해졌다. 소통이나 공감과 같은 가치, 정치적 타협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집단지성, 혁신 이런 덕목도 정치에서 대단히 중요해졌다. 사회가 복잡해졌기 때문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는 안 되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을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이런 특성을 안고 있는 제도가 내각제다. 특히 유럽에서 내각제는 그런 특성들을 많이 구현해왔다. 다당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 여러 정당들이 정책 합의를 통해 연정을 구성하고, 연정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면서 의회가 행정부를 통제하고, 동시에 의회와 행정부가 상호책임을 지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의회 권력과행정부 권력이 대립하는 일도 없어진다. 내각제를 통해 북유럽이나 서유럽에서는 안정적인 정치질서를 만들어 왔다. 물론 내각제가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내각제도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예를 들어 일본같이 금권정치가 발전할 수도 있고, 이탈리아처럼 기득권을 옹호하는 시스템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어쨌든 내각제를 하면서 국정의 효율적 운영과 안정, 문제 해결의 정치를 하는 데는 나름의 장점들을 보여 왔다. 오히려 일본정치의 문제는 소선거구제로 바꾸면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양당제 비슷한 형태가 되면서 제대로 된 연정이나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부분 안정된 내각제를 하고 있는 나라들은 다당제를 하고 있고,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를 통해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의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국민들 사이에서는 내각제에 대한 지지가 높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이 내각제를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각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 미성숙의 근본 이유가 대통령제에 있다고 한다면 내각제 요소를 더 많이 도입해서 정당도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과도 비슷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헌을 한다면 적어도 의회와 행정부가 지금처럼 대립하는 모델이 아니라 대부분의 정책 영역에 있어서 유기적으로 상호책임 하에서 굴러갈 수 있도록 하고, 운영에 있어서는 다수결 민주주의가 아니라 합의제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한다.


대통령을 직접 뽑고 싶은 우리 국민들의 요구에서 보면 국가 질서 전체를 관장할 국가 원수로서의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본다. 왕이 없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대통령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남북관계, 통일문제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역할을 주는 것이 좋다. 안보 등 정치적 당파성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영역들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갖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을 필요가 있다. 정당 출신이더라도 대통령이 되면 정당을 떠나서 대통령으로서 기능을 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진보, 보수가 함께 모여서 네 번 정도 개헌안을 만든 적이 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분권형으로 거의 합의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내각제로 어깨가 기운 분권형 형태다. 국민들은 아직 개헌의 내용이나 정치시스템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각제를 하면 국회의원들이 좌지우지하고, 대통령제를 하면 대통령이 좌지우지하는 것이라는 관념만 갖고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국회 사무총장을 하면서 각 나라 의회를 비교해 보니까 대통령제를 하는 나라들에서 국회의원의 특권이 훨씬 많다. 견제 권한을 줬기 때문에 대통령 권력이 강해질수록 의회 권력도 강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소득 대비 국회의원 월급이 제일 높고, 보좌관도 미국을 제외하고는 제일 많다. 의원들의 책임은 없고 발언권은 강하기 때문에 의원들의 권한 남용도 의회제를 하는 국가보다 훨씬 많다. 왜냐하면 의회제에서는 안 되면 물러나야 하는 책임정치를 해야 하니까 정당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통령제에서는 의원들이 청문회에서 목소리만 높이고 튀려고 한다. 책임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할 게 없기 때문에 발목잡기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소선구제이기 때문에 지역구에서 골목정치 하는 게 중요하지, 국정에 대해서 책임 있는 정치를 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를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역할을 지금의 대통령제에서 의회가 하고 있는 것이다. 힘은 크고 책임은 작고, 그러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런 정치를 하고 있다. 바꾸려면 이 두 가지를 함께 바꿔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정책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 시중에서 사람들이 다투는 그런 장면들을 정치라고 생각하는 문화부터 없애야 한다. 지금은 구의원이나 국회의원이나 현장에서 똑같이 움직인다. 악수 한 번 더 하고 표 동냥하는 것이 중요하다. 표를 구걸하는 정치로부터 벗어나 국회의원들을 국정을 다루는 사람들로 만들어야 한다.


국회의원 자질을 높이기 바라고, 권한을 줄이기를 바라고, 정책의 전문성을 갖는 사람으로 바뀌기를 원한다면 내각제로 가야 한다. 또한 정당이 지금처럼 선거정당이 아니라 정책정당으로 바뀌기를 원한다면 내각제로 가야 한다. 제도적 원인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만든 사람들 탓으로 돌리려고 하면 이런 모습이 반복 재생산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을 제대로 뽑기 위해서라도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내각제와 대통령제를 비교하면 내각제는 장관의 임기도 훨씬 길고 공무원들도 훨씬 중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 장관들도 의회 내에서 그 분야의 전문성을 충분히 쌓고 오지 않으면 장관이 될 수 없다. 지금의 국회의원들을 놓고 내각제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내각제로 바뀌면 국회의원들도 바뀐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


개헌을 매개로 해서 최근 ‘제3지대론’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초대 원장을 맡고 계신 ‘새한국의 비전’도 보수 혁신을 내걸고 출범 했는데 앞으로의 역할은?


우선 이번 계기를 통해 새누리당은 해체되는 게 맞다. 새누리당은 이미 국정농단을 비롯해 온갖 얼룩이 진 상태이다. 또 지난 20대 총선 공천권을 완전히 전횡해서 정치인들을 뽑아 놓은 것이 아니라 회사원들을 뽑아 놨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초선 의원들이 목소리 한 번 못 내고 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정당이라고 볼 수 없다. 새집을 지어야 한다. 새누리당을 청산하고 새집을 짓든, 뭘 하든 좋은데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 기본적으로 다당제 구도로 가는게 맞다. 다당제 구도로 간다면 극좌부터 극우까지 중도보수, 중도, 진보 이렇게 다양하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 정당들이 자기 정책을 가지고 다른 정당들과 연대를 해서 정권을 운영하는 이게 바로 협치다. 그런 방법으로 생각할 때 미래지향적 중도 보수세력과 중도 진보세력이 함께 연대를 해서 공동의 플랫폼을 가지고 공동정권을 만들어 보자는 기획이다.


친박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낡은 극우세력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라고 한다면 친노, 친문은 다른 의미에서 폐쇄적인 세력이다. 폐쇄적인 세력이 나라를 이끌고 가는 것은 맞지 않다. 그 세력들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세력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다. 다음 대선은 그런 폐쇄적인 성격의 권력을 또 만들 것이냐, 개방적이고 포용적이고 협치와 연대의 개념으로 정권을 만들어서 거기에 맞는 제도 혁신을 해 낼 것이냐 이게 관건이라고 본다. 제3지대론이 나오는 이유는 다양한 세력들이 이종교배를 해서 우리 사회에도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세력이 집권을 하는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비록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와 철학이 다르더라도 우리나라의 현실과 상황과 미래를 볼 때 좌우를 떠나서 꼭 추진해야 될 정책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합의할 수 있다고 본다. 교육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등 6~7개 분야는 보수, 진보를 극단적으로만 따지지 않으면 공동의 아젠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공동의 정책을 가지고 연대를 해서 집권한다면 각각 책임을 지고 맡아서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개혁은 우파가 끌고 가기가 쉽지 않다. 노동개혁은 노조와 대화가 되는 진보세력이 끌고 간다든지, 교육개혁은 소신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 수 있는 사람과 세력이 전담을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플랜을 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기민당 정부 아래에서 환경과 외교는 녹색당이 계속 가져가고 있다. 그것은 정책 합의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지금은 이를 위해 정치 현장에서 직접 쓰일 정책을 만드는 일과 공동의 플랫폼을 만들어 연합세력을 만드는 정치적 조정 역할을 하고 있다.


보수 혁신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이뤄져야 할까요?


지금 보면 아스팔드 우파들이 친박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는데 이들은 준 관변단체라고 봐야 한다. 반면 일부 보수 시민단체들은 이번 탄핵에 찬성하기도 했는데 대체로 중도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시민단체들이다. 국민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에는 우리 국민의 보수와 진보 성향을 5.5대 4.5로 보수가 많다고 봤는데 이번 사태 이후로 그 지형이 왼쪽으로 더 기울었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5대 5정도가 아닐까 싶다. 보수 중에는 30% 정도가 중도보수라고 보는데 합리적인 보수, 포용적인 보수라 할 수 있다. 15~20%는 완고하고 강고한 보수라고 볼 수 있다. 진보에서도 20%는 급진적인 성향을 갖는 세력이고, 30%는 중도 진보, 합리적진보세력이라 할 수 있다. 합리적인 진보, 보수를 합치면 훨씬 넓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보수혁신은 미래 지향적인 중도 보수 세력이 하는 것이 시대의 가치에도 맞고 우리 사회 문제를 푸는 데도 바람직하다. 우리 사회가 국민들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지향하는 사회로 가려면 그렇게 가야한다. 발전국가모델은 강한 리더십이 제시하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는 모델이었다. 국가주의자들은 아직도 강력한 리더가 나타나서 국민들을 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나 수준이 그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아직은 선동의 정치가 일정하게는 통하겠지만 우리사회가 이미 그런 것을 넘어설 성숙성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GDP 우선주의로는 안 된다. 발전국가의 경우 GDP의 성장으로 모든 게 된다는 관념이라면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과 자아실현, 행복을 중심으로 둔 국가경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작년부터 얘기해 온 공진(共進)국가 모델이다.


헌법에도 나와 있지만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익과 행복을 증진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공진국가는 헌법정신에도 충실하다. 지금은 GDP를 올리는 것 못지않게 삶의 질 지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고도성장 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성장하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성장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이 중요하다. 창의적이면서도 협력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고, 공동체를 배려할 줄 아는 윤리적인 인재가 대한민국 미래 시민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정치, 적대적 정치를 그대로 나둬서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이 시대의 중심 가치가 소통, 공감, 숙의, 협치, 지적 네트워크, 혁신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답도 이미 나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진국가 모델은 협치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주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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