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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통일의 기본문제 재인식


[김영환 | 준비하는미래 대표 ]

※ 편집자 주) 통일시대를 맞아 통일문제 전반에 관한 김영환 준비하는미래 대표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입니다.


1. 통일의 당위성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국제사회에서 적절한 이유로 인정되지 않는다. 현재 1민족1국가는 일반적인 국가 구성 원리로 인정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1민족1국가에 비교적 가깝게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일본뿐이다. 그뿐 아니라 1민족1국가를 형성해야겠다는 운동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통일아랍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운동이 50~60년 전에 한때 거세게 불었지만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쿠르드족 통일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는 있지만 30~40년 전에 비하면 그 동력이 1/5에서 1/10로 줄어든 상태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몽골인은 그 30% 정도가 몽골(외몽골)에 살고 30% 정도가 중국 내몽골에, 20% 정도가 중국 타 지역에, 20% 정도가 외국에 살지만 몽골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운동은 최근 몇 십 년 동안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이 대만과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서양과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공하기 이전의 영토 기준에서 단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국가영토관념의 표현이며, 민족통일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민족이란 뭔가 분명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족이란 아주 모호한 것이다. 미주, 아프리카 등에서는 아예 민족 개념의 형성이 어렵게 되어 있고 그 이외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도 민족을 분류하거나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민족을 중심으로 국가정책을 수립하거나 국가의 가치를 설정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점차 금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단순히 같은 민족이라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남과 북이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 의하면 남북한은 단일국가다. 그러나 이는 우리 내부의 규정일 뿐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도 남한과 북한을 독립국가처럼 대하고 있고, 유엔도남북한을 각각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미 남한과 북한은 70년 가까이 독립국가로 운영되어 왔다. 대만을 독립국가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소수인 것과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과 유엔까지도 남북한을 각각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인들조차 남북한을 각각 독립국가로 인식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헌법에 따르면 북한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런 규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부감을 느낀다. 대한민국 인구가 얼마냐고 물으면 압도적인 다수가 5천만이라고 답하지 7천5백만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한국인들 스스로가 이럴진대 국제사회에 대고 우리는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좀 우습기도 하다.


그럼 통일의 당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남북한은 지난 70여 년동안 통일을 국가의 핵심가치이자 목표로 설정하고 추구해왔다. 남북한 어느 쪽도 통일을 반대하거나 통일을 국가의 핵심목표에서 제외시킨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남북한이 그럴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구소련과 러시아 등 주변 주요국가 대부분이 일관되게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해왔다. 친교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일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했으며 통일을 반대한다고 말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었다.


따라서 통일은 단순히 우리만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동의를 여러 차례 얻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가치이자 목표이다. 남북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주요 정당들 중에서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것을 정강정책에 포함한 정당이 없다. 따라서 이는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변하지 않을 공인된 가치와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통일이 우리에게 행복과 발전을 가져다 줄 것인가? 이건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답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통일 이후 10~20년만 놓고 본다면 통일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과 고통이 통일로 인해 발생하는 좋은 점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본다. 통일의 장기적인 효과는 대부분 불확실한 것이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는 비교적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첫째 분단 상태가 현재처럼 지속되면 남북 간의 군사적 대립과 긴장을 결코 극복하지 못 할 것이며 그런 군사적 대립이 어떤 끔찍한 길로 인도할지 아무도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통일밖에 없다. 둘째 한국병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거의 찾기 힘든 조건에서 통일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약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점차 노쇠해지고 경직되어가고 있다. 창조적 열정이나 강인한 의지 같은 것은 점차 찾기 어려워지고 있고 중장년층이나 청년층이나 모두 편한 것에 안주하려고만 하지 개척정신을 발휘하려는 사람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경제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발전에너지가 사그라지고 있다. 정부와 민간에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도 이런 추세는 변화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통일은 이런 한국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약이다. 다른 약이 거의 듣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점에서 본다면 거의 유일한 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약이 이런저런 부작용이 있듯이 통일도 부작용이 있다. 상당히 크다. 감내하기 쉽지 않은 고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우리가 달콤하게 안주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사정없이 두들겨 깨버릴 수도 있으니 그 고통이 상당할 것이다. 통일을 외과수술 하듯이 아주 정교하게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은 부정적인 것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들도 일정 정도 파괴할 것이다. 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점차 노쇠해지고 경직되어가는 나라를 그냥 무작정 방치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고통스럽더라도 새로운 미래를 적극 개척해가는 것이 승산도 더 있고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 무엇을 통일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통일하려고 하는가? 통일은 한 마디로 주권의 통일과 문명의 통일이다.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서 오해하는 게 있다. 통일 하면 제도의 통일이라든지, 이념의 통일이라든지, 문화의 통일이라든지, 경제의 통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도, 이념, 문화, 경제는 통일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오히려 통일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남북한 사이에 주권의 통일이 이루어지면 각기 다른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대적 보편성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의 북한제도와 같은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다양한 근대적 제도를 모두 포용할 수 있다. 오히려 남북한은 발전단계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각각 다른 제도를 갖는 것이 그 운영과 발전에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는 다양한 이념을 존중하고 포용하기 때문에 애초에 이념의 통일이라는 게 필요하지도 않다. 이념의 통일은 김일성 체제 하에서나 필요한 것이지, 자유세계에서는 추구할 필요가 없다. 이념의 통일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필요도 없지만 근대사회의 기본적인 가치관 위에 확고히 서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유, 평등, 인권존중, 입헌주의, 법치주의 등의 근대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이 분명해야 한다. 따라서 온갖 다양한 이념을 모두 포용할 수 있지만 근대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에 배치되는 김일성주의, 스탈린주의, 모택동주의, 파시즘 등을 용납할 수는 없다. 이런 반근대적인 이념을 제외한다면 우파, 좌파, 중도파의 다양한 이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으며 이념의 통일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문화의 통일도 마찬가지이다. 한 국가이니 혹은 한 민족이니 반드시 통일된 문화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파시즘적인 논리이다. 물론 문화적 이질성이 지나치게 강하면 문제가 있지만 이 문제는 통일국가를 구성하면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다. 급속하게 추구할 필요가 없다. 남북한의 생활양식이나 주택양식, 의복, 음식, 음악, 미술 등을 굳이 통일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가? 물론 언어는, 가능한 빨리 남북한 통일 표준어를 제정할 필요는 있으나 실생활 사용언어를 급진적으로 통일할 필요는 없다. 문화는 서로의 것을 존중하는 것을 중심으로 가면 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남북한은 경제수준, 발전동력, 경제시스템이 완전히 다르다. 북한 경제에서 당면해서 필요한 인플레이션율, 통화발행정도, 금리, 여신정책, 고용정책, 세금정책이 남한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경제 통일을 반드시 하는 게 좋은지 의문이다. 따라서 제도, 이념, 문화, 경제의 통일은 반드시 즉각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일하는가? 핵심적인 것이 주권의 통일과 문명의 통일이다. 주권은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이기 때문에 주권의 통일이 안 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권의 통일을 우선적이고 절대적으로 해야 한다. 주권은 글자 그대로 누가 주인이냐 누가 권력을 갖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서 홍콩이나 마카오의 주권은 중국에 있다. 홍콩이 행정도 독립적으로 하고 있고 정치체제, 경제체제도 중국과 다르게 운영하고 있고, 영사문제, 무역도 독립적으로 처리하지만, 홍콩의 주인은 중국이고 궁극적 권력은 중국이 갖고 있다. 이것이 주권 문제다. 주권의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권이고, 둘째는 외교적인 인정(주권을 다른 나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다른 나라가 인정 안 해줄 이유는 별로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권이라고 볼 수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군사권은 남북한 모든 주민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위임받은 기구나 조직에서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통일 초기에는 남북한의 통합 정도도 낮고 단일국가로서의 의식도 낮기 때문에 군사권이 불안정한 기구나 조직에 위임되어 있으면 심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통일 초기 군사권은 통일을 주도하는 측에 집중되어 있을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한다.


주권의 통일 다음으로 문명의 통일이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장기적인 과제로서 추구해야 한다. 문명의 통일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통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고 통일이 제대로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문화의 차이는 꼭 극복할 필요도 없고, 극복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빨리 극복할 수 있다. 언어, 의복문화, 식문화, 음악, 미술 등 문화적 차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문명의 차이는 대단히 크고 극복하기 쉽지 않다. 문명의 차이 중에서 과학지식, 생산기술, SOC는 비교적 빨리 차이를 좁힐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인권의식, 정치적 주인의식, 민주적 의식과 태도,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 법치의식, 타인에 대한 존중, 소수에 대한 보호 등의 문명적 차이는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없다. 한국의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한국은 대단히 빨리 발전하고 과학기술도 빨리 성장했다. 소득수준이나 경제생활수준에서는 다른 선진국들과 별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정신문명적인 면에서는 다른 선진국과 여전히 격차가 있다. 성공적인 통일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것은 결국 문명적인 통일을 얼마나 잘 성취하느냐로 귀결된다. 30~40년 내에 80~90% 정도까지 문명적 통일을 이룬다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통일된 지 25년이 되었는데, 동독출신의 메르켈 총리의 집권에서 상징화되듯이 문명적 차이를 거의 극복했다. 동서독은 17세기말부터 근대문명을 공유해 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문명적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독일 국민들 특성상 규율을 잘 지키고 인내심이 강한 것도 갈등을 잘 수습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는 독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남북한이 근대문명을 공유해온 역사가 거의 없고 남북한의 문명적 격차는 매우 크다. 독일이 통일 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4배, 5배 혹은 그 이상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3. 통일의 난제들


1) 통일이 북한 주민들의 자주성이나 자립심을 훼손시킬 수 있다


북한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각하고 자주적으로 노력하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열정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남북의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남한의 경제적인 지원과 힘에 의존하려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힘의 차이, 발전단계의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존재가 만났을 때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선의가 있다고 해도 강한 존재가 약한 존재의 자주성을 훼손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2) 남북한 주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가 어렵다


북한의 기본적인 재건, 기본적인 SOC 건설만 해도 많은 비용이 들 텐데, 통일 이후 남한에서는 이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겨날 것이다. 남한은 남한대로 많은 것을 희생해서 북한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길 것이고,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곤궁한데 이것밖에 지원을 안 해주느냐는 불만이 생길 것이다.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니다 보니 그런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게 더 어렵다. 갈등을 조절하는 안전망이나 완충망을 만들기도 어렵다.


3) 남북한의 발전단계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도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너무 심하게 다르면 어렵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해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집단적으로 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흐르면 심각한 정치적 충돌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혼란과 소요사태가 끊임없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상당기간 남북 간의 이동을 제한하더라도 필수적인 남북 간의 접촉면은 적지 않다. 교육, 투자, 기술지원, 인력지원, 관광, 이산가족 재회 등으로 최소 20만 명 이상이 북한에 상주하게 될 것이다. 수가 많지 않아도 기술지원이나 교육, 기업관리 등은 접촉면이 매우 넓을 수밖에 없다.


4) 완충지역이 없어진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대립의 완충지역이고, 일본과 중국 사이의 완충지역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북한이 중간에 있어서 미군과 중국군은 육지에서 서로 마주보지 않았다. 또한 동북아의 핵심 문제가 북한 문제로 귀결됨에 따라 중미 상호간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크게 부딪히지 않았다. 미국도 악의 축을 이야기하면서 북한에 대해 비판하고 공격했지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북한이 사라지고 통일이 된 상황에서 미중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면 중간에 끼어 있는 한국은 훨씬 더 곤혹스러운 입장이 될 것이다.


5) 북한이 개도국 혜택을 잃어버린다


북한이 개도국으로서 가질 수 있는 교역상의 특혜, 투자유치에서의 특혜, 각종 원조에서의 우선권, 기후변화협약 등 환경규제에서의 예외조항들이 사라진다. 한국과 하나의 공동체가 되면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6) 통일비용


통일비용은 그 자체도 심각하지만 그 자체보다 통일비용과 연관된 정치적 압박과 정치적 소요를 국가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객관적 통일비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독은 아주 부유했고 인구도 동독 인구의 3.5배나 되었다. 따라서 객관적 통일비용을 설정해놓고 이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다. 통일비용이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비용이 바로 통일비용이다. 통일비용이 1조 달러니 3조 달러니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한 금액을 설정해놓고 통일비용이라고 해봐야 그게 현실 정치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통일비용을 산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쪽에서는 북한재건과 북한유지관리의 최소 비용을 계산하고, 또 한쪽에서는 남한의 경제능력, 조세저항, 경제충격, 공적비용 감축의 현실적 가능 정도를 고려해서 낼 수 있는 현실적 돈을 계산해 그 중간 정도의 적정 균형점으로 정하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 균형점이 남북 양쪽에서 거센 저항에 부딪혀 심각한 정치적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할 경우는 통일비용 산출 논의과정부터 혼탁해지고 균형점에서 결정되기보다는 어느 한쪽에 편향되어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정치적 혼란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흔히 통일비용을 이야기할 때 국방비 감축분이 일정 부분 상쇄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국방비가 줄어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우선 감축 반대 의견이 매우 강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의 정세불안, 중국과 일본의 강력한 군비확장, 영토 분쟁 등 국방비 감축을 반대하는 논리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설사 국방비가 감축된다고 하더라도 범위가 소폭일 것으로 보인다. 만약 통일 이후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간다면 국방비는 오히려 더 늘 수도 있다. 무엇보다 국방비가 감축되더라도 북한재건비용과 비교도 안 될 것이다.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이 통일비용을 어느 정도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지만 큰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기존에 나와 있는 북한 지하자원에 관한 연구자료는 과장된 것이 많아 보이기 때문에 실제로 경제성이 있는 지하자원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인류 전체의 지하자원이 고갈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 가치가 높아질 텐데 우리가 극빈국도 아니고 지하자원을 빨리빨리 캐내어 다 팔아치우려 할 이유가 없다. 현재의 북한 광물 생산량에서 조금 늘어난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4. 지난 시기의 통일 원칙들은 유효한가


지난 시기에 많이 제기 되었던 원칙들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공존, 공영이 있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도 그렇고 공존, 공영도 북한의 현 체제가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만든 원칙이다. 북한 정권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을 믿을 수도 없고, 현 체제가 유지되는 한 북한은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 통일을 추구하면 북한 주민의 동요가 심해져서 체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북한 정권과 기득권 세력이 통일을 추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 자주의 원칙


북한에서 자주의 원칙을 사용할 때는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는 취지에서 주로 쓴다. 그런 것을 배제하고 자주의 원칙을 객관적으로 적용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의 국력이 강해졌고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통일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강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자주의 원칙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자주의 방향이 존중될 수밖에 없다.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 일본, 러시아는 더더욱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의 입장을 강력하게 반대하거나 저지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중국은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의 세계정책, 아시아정책에서 한국이 대단히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도 한국과 척을 지면서까지 한국의 통일정책을 반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현재는 북한이 독립국가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한반도 현상유지 정책을 추구하고 북한체제를 인위적으로 붕괴시키는 노선을 반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일단 북한체제가 붕괴되고 난 이후에는 안정성이 전혀 없는 북한의 대체정권을 지지하기보다는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며 중국 지도부도 이런 이해관계를 빨리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자주의 원칙은 특별히 강조하지 않더라도 지켜질 수밖에 없는 원칙이다. 오히려 자주의 원칙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면 통일에 이해관계가 있는 주요 국가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어서 통일에 불리한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다.


2) 평화의 원칙


이 원칙은 전쟁을 반대한다는 뜻인데, 북한은 민주적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권력자 한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발하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 북한에 평화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약간의 압력의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강제력이 될 수는 없다. 반면 남한은 대부분의 국민들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전쟁을 싫어하고 전쟁을 반대한다. 평화를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평화를 강조해봐야 결국 아무 소용이 없고 남한에서는 평화가 이미 확고한 원칙이 되어서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었다. 결국 남한에서든 북한에서든 평화의 원칙은 별 의미가 없다.


3) 민족대단결의 원칙


이 원칙은 남한과 북한이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이념을 존중하고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포용하고 연합해서 통일을 추구하자는 뜻에서 사용해왔다. 그러나 지난 몇 십년동안의 경험으로부터 현재의 북한 체제, 북한 정권이 유지되는 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현 체제라는 것은 김정은 일가 체제, 수령독재 체제를 뜻한다. 북한의 현 정권과 그에 기생하는 핵심 기득권 집단은 통일이 되면 설사 연방제통일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보호해주는 체제가 붕괴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반통일적일 수밖에 없다. 연방제라 하더라도 남북한 사이의 접촉면이 늘어나면 체제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잃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어떤 형태의 통일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반(反)통일세력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현 체제, 현 정권을 배제한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는 한, 민족대단결은 통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고, 심지어는 반통일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통일을 추구하면서 지켜야 하는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북한의 현 체제, 현 정권이 무너진 이후의 민족대단결이지, 북한의 현 체제와 정권을 포용하는 통일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4) 공존, 공영의 원칙


남한에서 주로 사용했던 공존, 공영의 원칙 역시 북한의 현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개념이 포함된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북한의 현 체제를 인정하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면 공존, 공영 개념도 결과적으로는 통일과는 배치된다.


5. 새로운 통일 원칙의 모색


1) 흡수통일


북한의 현 정권이나 현 체제를 유지하는 조건에서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일은 북한의 현 체제가 붕괴되어야 가능하다. 북한이 붕괴되고 새로운 체제, 정부가 들어서서 남북한이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하는 것은 형식논리상 이상적이겠지만 가능성이 거의 없다.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나 체제가 들어서서 안정화된다는 것도 극히 어렵다. 설사 새로운 정권이나 체제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그 정권이나 체제가 통일을 안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북한에 새로운 체제나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흡수통일이 되는 것이고 설사 새로운 체제나 정권이 들어서서 형식적으로는 대등한 것처럼 꾸미더라도 내용적으로 본다면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는 식으로 통일될 수밖에 없다. 이 때 흡수는 주권이 흡수되는 것이다.


과도기 주권문제의 핵심은 군대를 어떻게 처리할지의 문제와 중국이 북한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을 인정하는 문제다. 통일 당시 북한의 정권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 군대는 완전히 해산하든지 남북한 군대 8대 2나 9대 1의 비율로 통합해야 한다. 남한이 기존에 갖고 있던 체제 안정성, 경제력, 군사력에 기반하지 않으면 통일과정이 위험할 수도 있고 안정적이지 못할 수 있다. 신속하게 주권을 흡수하지 않으면 오히려 유혈충돌과 같은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북한사회의 다양한 세력, 특히 정치인, 고급 관료, 고급 군 지휘관들은 과도기나 혼란기에서는 어떤 입장에 설지 분명하지 않다. 북한과 같은 사회의 체제변동기에는 더 그렇다. 야심가들이 배타적인 권력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술책을 부리면서 통일에 협조적으로 나서지 않을 위험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과도기나 통일 초기에 주권을 아주 분명하게 하고 확고한 군사력으로 이 주권을 뒷받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흡수통일이 연방제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흡수통일과 연방제는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기존에 김일성이 이야기하던 고려연방제 같은 것은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자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통일방식으로서 연방제통일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은 한반도의 현실 조건에서 불가능한 것이다. 연방제통일과 흡수통일은 배치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흡수통일의 방식으로 통일이 실현되고 주권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조건에서는 통일 이후의 국가시스템으로 연방제를 고려 할 수 있다. 물론 흡수통일은 오로지 주권의 흡수를 의미하는 것이며 제도의 통일, 이념의 통일, 경제의 통일이 아니며 다른 어떤 것의 흡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2) 문명통일


통일이 어려운 것은 문명적인 차이가 크고 문명의 통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핵심적이고 중점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문명의 통일이다. 문명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는 어떻게 다른가.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애완견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거나 애완견을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거나 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이지만, 애완견을 고문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과 애완견을 고문하는 것을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명적 차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 같이 어울려 살기는 힘들다. 또 공공화장실의 휴지를 자주 훔치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의 휴지 비치가 중단된다든지, 화장실에 침을 뱉거나 더럽게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 사용이 꺼려진다면 이런 일들이 점점 불만을 고조시킬 수 있다. 인권의식도 마찬가지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켜야 하는 인권 규칙을 몇십 개씩 내민다면 심각한 심리적 압박, 경영적 압박으로 느낄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런 모습에 대해 인권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인권에 대한 초보적인 태도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런 문제들로 심리적인 골이 깊어지면 함께 살 수 없다고 느낄 것이며, 정치적 대결로까지 비화될 수도 있다.


3) 자주


자주의 원칙이란 민족 자주가 아니라 북한의 자주를 뜻한다. 북한 주민의 자주성, 북한 지역공동체의 자주성을 최대한 존중해주고보장하는 조건에서의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통일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시적으로 거친 과정, 부분적으로는 폭력적인 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 설사 거칠고 폭력적인 과정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최소화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최대한 북한 주민과 북한 지역공동체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보호해주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령 북한의 구체제를 옹호하는 게릴라가 생길 수도 있고, 지하 정치세력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 세력들도 폭력을 행사하겠지만 그들을 진압하거나 순치시키는데도 불가피하게 폭력이 행사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폭력의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한 불가피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관성이 생겨서 계속 억압하는 방향으로 나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항상 최대한 북한 주민의 자주성을 보호해주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근대적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 사람들 스스로 그들의 제도, 노선, 정책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4) 외교적 균형


통일 이후에도 미국과의 동맹관계, 우호친선관계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고 일본과도 우호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절대 홀시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지금도 이미 중국과 매우 긴밀한 경제관계, 문화교류, 인적교류를 갖고 있다. 중국 사회가 발전할수록 중국과의 경제적 통합성, 문화적 통합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통일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협력을 얻고 중국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통일을반대하거나 통일을 방해한다면 통일이 매우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에 성공적인 통일체제의 유지와 운영, 발전을 위해서 중국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돈은 중국에서 벌고 정치적으로는 미국에 붙어있다는 이미지는 일정 정도까지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이를 장기간 방치하면 한중관계가 불안정해지고 나아가 한반도나 동북아시아에 어두운 구름을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 일본과 중국은 원한이 워낙 깊어서 노력해도 관계개선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꾸준히 진심어린 노력을 지속하면 한중관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미국과의 관계에도 정성을 쏟아서 미국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중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앞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더 높다. 우리로서는 매우 우려스럽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원칙을 잘 지켜야 하며 인내심을 갖고 한미, 한중관계를 모두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5) 정치우선주의


통일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그리고 통일 이후가 밝은 미래를 약속할 것이냐, 지옥이 될 것이냐를 결정하는 관건은 정치다. 정치적으로 북한 주민들을 얼마나 잘 설득하고, 잘 홍보하고, 잘 조직하느냐,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얼마나 잘 얻을 수 있느냐, 남북한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잘 화합하게 하고, 정치적으로 잘 단결하게 하고, 통일을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를 정치적으로 얼마나 잘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통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핵심이다. 정치는 항상 중요하지만 특히 통일시대는 정치적 격변기이기 때문에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각계가 시스템화 되어서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의 범주가 넓지 않다. 정치인들이 반드시 아주 유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생 자기 분야의 일만 해서 정치적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교수나 관료, 법조인 같은 사람이 정치인이 되더라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사회가 잘 짜여 있다.


그러나 통일시대는 완전히 달라진다. 통일시대의 국가시스템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기존에 있던 한국의 시스템이 그대로 통일국가의 시스템이 될 수 없다. 엄청나게 다른 문명적 차이를 지닌 두 집단이 만나서 통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큰 정치력을 필요로 한다. 정치적으로 잘 훈련되어 있고 정치적인 전략전술 수립에 대단히 능숙하고 정치적 홍보활동, 정치적인 설득, 정치적인 타협, 정치적인 교육에 능숙하고 오랫동안 훈련되어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 통일시대를 주도해야만 한다. 정치적으로 아주 초보적이고 무능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는 결코 통일시대를 성공시킬 수 없다. 특히 남북한 주민 모두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정치성향 등을 잘 아는 정치인들을 육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6) 교조 반대


통일과정에서 그 어떤 형태의 교조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도 일종의 교조다. 이를 포함해서 어떤 것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통일도 교조화해서는 안 된다. 통일을 교조화하고 절대화하면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 대표적인 교조에는 평화주의가 있다. 평화를 지향하고 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이것 역시 절대화하면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군사력을 동원해서 처리해야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도 교조다. 북한은 대단히 낙후된 사회이기 때문에 북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능한 기본적인 자유민주주의적인 원칙을 지켜야겠지만 이를 교조화해서는 안 된다. 박정희, 장개석, 장경국, 리콴유 등의 근대화 과정을 보면, 권위주의를 동반하여 사회를 빨리 발전시켰다. 남한식의 자유민주주의를 지나치게 북한에 적용하는 것도 교조에 해당한다. 북한도 근대적 보편성의 범주를 벗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김일성주의나 스탈린주의식 시스템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일정 정도 수준의 권위주의는 용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경제 역시 서구식이나 남한식 경제질서를 무조건 교조적으로 북한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박정희식의 국가주도형 경제발전이 북한에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문명전수와 문화존중의 조화


현대 세계는 단일한 문명이 있다. 바로 ‘현대문명’이다. 여전히 세계에 다양한 문명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거짓이거나 허구일 뿐이다. 북한에 독자적 문명이 있어서 보존해야되는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문명은 철저히 앞선 쪽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 산업, 법률, 행정, 정치제도, 정치의식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북한은 외부세계의 문명을 빨리 받아들이고 학습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의 문명을 빨리 받아들이고 문명적으로 빨리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물적 인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과거 80년대식의 전형적인 통일론자들은 누가 누구를 지도하느냐며 오만하고 교만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형식논리에 구애받지 말고 문명전수에 집중적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문화적인 면은 다르다. 문화는 문명과 달리 어느 쪽이 앞서고 어느 쪽이 낫고 하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언어, 패션, 식문화, 음악, 미술, 무용 등은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태도를 앞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TV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북한식 말투나 북한식 패션, 기타 북한문화를 비하하는 내용이 많아서 걱정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에 대해 경제수준이나 문명이 낙후되었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자세가 잘못이라는 것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비판하고 설득해야 한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은 저절로 우러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북한 주민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도록 국민들을 교육하고 정치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8) 통제와 포용의 조화


북한의 체제변화 과정, 통일 과정에서 다양한 저항 세력이나 혼란조성 세력들이 나올 수 있다. 그들에 대한 통제는 불가피하다. 통일 이후에도 혼란을 야기하는 요소가 지속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통제도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 주민들은 발전된 시스템에서 안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사소한 선동에도 쉽게 넘어갈 수 있고 에너지가 위험한 방향으로 분출될 수도 있다. 형식이 어떻게 되었든 통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역시 지나치면 안 되고 절제가 있어야 하고 포용과 조화가 되어야 한다. 통일 초기 북한 지역에 남한과 같은 수준의 정치적 자유를 줄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제약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억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해방을 하겠다고 말하고선 억압 일변도로 가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북한의 발전을 위해 유익하지도 않다.


근대적 보편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설사 생각이 좀 다르고 정치적 지향이 좀 다르더라도 이를 무조건 배척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 정치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억압하는 방법으로 통제수단을 남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포용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면 최대한 포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러한 포용의 자세에는 근현대사까지 포함된다. 근현대사에서 사실관계가 명확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과 근대적 보편성의 기준에서 볼 때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제외하면 항일운동과 북한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모두 포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근현대사에서 특정 관점만 고집하고 주입하려고 한다면 사회를 분열시키고 불온한 에너지를 농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9) 급진과 점진의 조화


일반적으로 급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통일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급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첫째가 주권 문제다. 주권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점진적으로 하다 보면 문제들이 많이 생기고 중간에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고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많다. 또 급진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과학기술발전, SOC 건설, 경제적인 기초발전이다. 워낙 남북한의 격차가 커서 급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급진은 본질적으로 좋은 게 아니다. 급진적으로 처리해서 문제가 된 경우가 문제가 안 된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급진으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문화적 통합, 경제적 통합, 북한의 정신문명을 발전시키는 문제라든지, 북한의 제도개선 등의 문제는 지나치게 느리게 갈 필요도 없지만 가능하면 앞뒤 좌우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한발 한발을 최대한 정확하게 내딛는 것을 중심에 두고 나가야 한다. 속도보다는 정확성이 중요하다.


10) 사람 중심의 통일


통일은 사람들과 독립해서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위해서 통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방법도 남북한 주민들이 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 통일국가 운영도 역시 사람들을 위해 가장 이로운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통일을 위한 통일이 되지 않도록 늘 유의해야 한다. 통일의 유지가 남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 유익한지 고통이 크지 않은지를 늘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통일국가의 유지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좀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통일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노력해서 개선되지 않고 사람들의 고통과 혼란이 더 가중되어 가며 개선될 조짐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 강도를 예상할 수는 없지만 통일과정에서 남북한 양쪽에서 재분단 운동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재분단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는 노력을 하되 갈등과 혼란이 지나치게 커지기 전에 재분단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다. 통일을 절대화해서 억지로 재분단을 막게 되면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고 오히려 재통일이 영원히 물 건너갈 수도 있다. 재통일되고 안 되고와 상관없이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자유롭게 왕래하며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서라도 재분단 과정에서 갈등이 지나치게 커지기 전에 일정 정도 단계에서 놓아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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