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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로 본 세상]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성부(成否)


[이재교 | 본지 발행인]

[판례로 본 세상]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성부(成否)

 

                                                  

 

1. 들어가며

 

대통령이 정쟁에 휘말리다 보면 탄핵을 받을 수 있고, 탄핵이 인용되어 파면될 수도 있다. 탄핵되었다면 위법한 행위를 한 데에 기인하겠지만 그렇더라도 탄핵당하는 것이 쿠데타나 4·19와 같은 시민혁명으로 축출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탄핵제도는 헌법이 정한 절차고 이 절차에 따른 결정이므로 헌정파괴에 비해서는 민주적이고 법치주의에 충실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뇌물죄를 짓고 탄핵된다면 국가의 품격 면에서는 쿠데타로 축출되는 일 못지않게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성립 여부를 놓고 대통령과 특검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공동 출연하여 설립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대하여 검찰은 대기업들이 강요에 못 이겨 출연하였다고 보아 직권남용죄를 적용하였지만 국회는 대기업들이 대통령으로부터 대가를 기대하고 출연하였다고 인정하여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결서에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적시하였고, 특검 역시 이재용 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통하여 뇌물죄를 적용하고 있다. 동일한 행위를 놓고 검찰은 직권남용죄를, 국회와 특검은 뇌물죄를 적용한 것이다.

 

두 죄는 여러 면에서 크게 다르다. 우선, 법정형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징역형만 보더라도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의 징역에 불과하지만, 뇌물죄가 성립할 경우 뇌물액수가 1억원이 넘기 때문에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가법)이 적용되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가 된다. 둘째, 죄질에서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이지만 뇌물죄는 공직을 이용하여 뇌물을 받아 챙겼다는 것으로 그 파렴치성이 직권남용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셋째, 돈을 준 대기업 총수들로서는 직권남용죄일 경우 피해자에 불과하지만, 뇌물죄라면 뇌물을 공여한 범죄자가 된다. 특검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뇌물공여죄를 적용한 것이니 대통령의 뇌물죄를 전제로 하였음은 물론이다.

 

이 글에서는 뇌물죄가 무엇인지,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이 필요한지 대법원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성립 여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다만, 범죄의 유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실관계, 즉 관련자들이 어떤 의사로 어떤 행위를 하였는지 확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필자로서는 관련증거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므로 판단하기 어렵다. 안종범 전 수석, 기업총수들, 재단설립에 관여한 사람들의 출연 경위에 관한 진술, 그리고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통하여 기업인들에게 재단설립을 권유한 것은 사실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점을 종합하여 볼 때 적어도 아래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고 보고, 이 사실을 기초로 뇌물죄 성립여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통령이 20157월경 대기업 경영자들을 단독으로 면담하면서 재단법인 설립을 위한 기금출연을 권유(또는 요구)하였고, 16개 그룹이 미르재단설립을 위하여 486억원을,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하여 288억원을 출연하였고, 이에 기하여 201610월 두 재단이 설립되었으며, 두 재단법인의 임원진(이사, 감사)을 최순실이 인선하여 그 운영을 사실상 장악하였다.

 

그 외에 K스포츠 재단이 롯데그룹으로부터 체육시설건립기금으로 70억 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은 확실한 듯하고, 삼성그룹이 승마협회 등을 통하여 최순실에게 백수십억 원을 지원하였다고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대통령의 직접 관여행위가 객관적으로 밝혀졌다고 보기는 어려워서 범죄성립 여부를 논하기는 무리이므로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2. 뇌물죄

 

. 뇌물죄의 본질

뇌물죄는 공직을 매수하는 범죄로서 공직이 존재함과 동시에 발생하였다고 본다. 뇌물을 받는 수뢰죄와 뇌물을 주는 뇌물공여죄로 대별된다. 공직자는 국가 공동체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으로서 그 직무행위나 영향력을 통하여 특정인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데, 그 이익을 대가로 금품을 주고받는 것이 뇌물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금품에 의한 공직자 매수를 금지하는 것이 뇌물죄이므로 뇌물죄의 보호법익은 국가기능의 공정성이다.

 

로마법과 게르만법은 현대법학의 양대 근원인데, 뇌물죄와 관련하여 두 법계는 차이를 보인다. 로마법에서는 공직자가 직무행위를 대가로 금품을 받으면 부정한 직무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뇌물죄가 성립함에 반하여 게르만법은 금품을 받는 외에 부정한 직무행위를 하여야 뇌물죄 성립을 인정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뇌물죄에 관하여 로마법을 따르고 우리 형법 또한 그러하다. 공직자가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뇌물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또한 명시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 뇌물죄의 특징 및 유형

뇌물죄는 그 행위 양태에 따라 범죄 유형이 다양한데, 공통적인 점은 금품을 받은 경우뿐만 아니라 요구하거나 수수를 약속한 경우에도 성립한다는 것이다(이하 수수라고만 한다). 공직자가 뇌물을 수수하는 형태에 따라 뇌물죄는 다음과 같이 구별된다(법정형은 징역형만 표기함).

 

(1)단순수뢰죄: 직무에 관하여 금품을 수수(형법 129, 5년 이하 징역)

(2)사전수뢰죄: 공무원이 될 자가 직무에 관한 청탁을 받고 금품 수수(형법129, 3년 이하 징역)

(3)사후수뢰죄: 공무원이었던 자가 재직 중에 부정한 청탁을 받아 부정한 업무처리를 하고 퇴직 후에 금품 수수(형법 131, 5년 이하 징역)

(4)3자뇌물제공죄: 직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수수하게 함(형법 130, 5년 이하 징역)

(5)수뢰후부정처사죄: 뇌물을 받은 후 부정한 직무행위를 함(형법131, 1년 이상 징역)

(6)알선수뢰죄: 공무원이 다른 공무원이 담당하는 직무에 관한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형법 132, 3년 이하 징역)

(7)특가법(뇌물)위반죄: 위 수뢰죄에 대하여 수뢰액수별로 형을 가중(특가법 2, 수뢰액 1억 이상이면 무기 또10년 이상 징역, 수뢰액 5천만-1억원이면 7년 이상 징역, 수뢰액 3천만-5천만원이면 5년 이상의 징역)

(8)청탁금지법(속칭 김영란법) 위반죄: 공무원, 언론기관 임직원, 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청탁금지법221, 3년 이하 징역)

(9)뇌물공여죄: 위와 같은 수뢰죄 또는 청탁금지법 위반죄가 성립하도록 금품을 제공(형법 1335년 이하 징역, 청탁금지법 224, 3년 이하 징역)한 경우에 성립하고, 제공자의 신분은 무관

 

수뢰죄의 주체는 공무원에 한정되므로 이른바 신분범이다(身分犯, 특정한 신분이 있을 때 비로소 범죄가 성립하는 진정신분범). 따라서 공무원이 아닌 사람은 단독으로 수뢰죄를 범할 수 없고, 공무원과 공범이 될 때에만 가능하다. 공무원은 공직을 맡은 통상의 공무원을 말하는데, 특가법은 공무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한 각종 공사, 공단, ···수협, 한국방송공사(KBS) 등의 공기업의 임원 및 간부직원을 수뢰죄의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평직원은 제외).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비롯한 법률은 각 위원회(국가인권위원회, 문화재관리위원회, 청소년위원회, 건설심의위원회 등)의 위원에 대하여 형법상 공무원으로 보는 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민간위원도 뇌물죄의 주체가 된다. 다만, 공무의 내용이 단순한 기계적·육체적인 것에 한정되는 공무원, 예컨대 청소원, 기관실 기술자와 같은 공무원은 제외된다(대법원 201112639판결 등). 이러한 직무는 그 내용상 금품으로 매수될 위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수뢰죄의 주체임은 물론이지만 최순실은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아니하였으므로 단독으로는 주체가 될 수 없다. 공무원이 아닌 최순실은 대통령이든 비서관이든 공무원과 공범관계가 성립할 경우에만 주체가 될 수 있다. 특검이 대통령과 최순실이 경제공동체를 이루었음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의 쟁점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 등에 출연을 권유하여 대기업들이 미르재단설립을 위하여 486억원을, K스포츠 재단설립을 위하여 288억원을 출연하도록 한 행위가 뇌물죄에 해당하는지 살펴본다.

 

. 직무관련성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반드시 직무에 관하여금품을 수수하여야 한다.

 

뇌물죄의 '직무'라 함은 공무원이 법령상 관장하는 직무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 또는 관례상이나 사실상 소관하는 직무행위 및 결정권자를 보좌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직무행위도 포함한다(대법원 2010.12.23.선고201010910판결).

예컨대, 구청에서 건축허가를 담당하는 9급공무원이 식당 위생검사를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500만원을 받은 경우 직무에 관한 것이 아니고, 말단 9급 공무원이 위생담당 공무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이런 경우에도 처벌하자는 것이 속칭 김영란법이므로 2016.10.28. 이후에는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100만원을 초과하여 돈을 받은 공무원, 언론인, 사립학교직원은 처벌됨. , 공무원은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 더 무거운 수뢰죄로 처벌됨)

 

위 판례에서 주목할 점은 고유의 직무뿐만 아니라 그 지위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직무도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위 사건은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수뢰사건이다. 피고인은 금융감독원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주식 상장폐지를 막아달라는 청탁 등과 함께 금품을 받았다가 수뢰죄로 기소되었다. 법원은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의 소관부처이고, 정무위원회의 수석전문위원은 소속위원회 관련 민원이 있을 경우 해당 기관이나 부처에 그 민원취지를 전달하여 민원이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점을 들어 뇌물죄의 직무관련성을 인정한 것이다.

 

수뢰죄에서 대통령의 직무에 관한 대법원판례를 살펴보자.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하여 정부의 중요정책을 수립·추진하는 등 모든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대형건설 사업 및 국토개발에 관한 정책, 통화, 금융, 조세에 관한 정책 및 기업활동에 관한 정책 등 각종 재정·경제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을 최종 결정하며, 소관 행정 각 부의 장들에게 위임된 사업자 선정, 신규사업의 인·허가, 금융지원, 세무조사 등 구체적 사항에 대하여 직접 또는 간접적인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고, 위 피고인이 경영하는 기업체와 관련된 그 판시 국책사업의 사업자 선정도 역시 대통령의 직무범위에 속하거나 그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

 

위 국책사업의 사업자 선정이 위와 같이 대통령의 직무에 속하거나 그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인 이상, 이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금품을 공여하면 바로 뇌물공여죄가 성립하고, 대통령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지의 여부는 범죄의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것...

 

대통령에 대한 금원 공여의 취지가 기업경영과 관련된 경제정책 등을 결정·집행하고 금융·세제 등을 운용함에 있어서, 우대를 받거나 최소한 불이익이 없도록 하여 달라거나 국책사업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달라는 데에 있었던 것인 이상, 그것만으로도 앞서 본 대통령의 직무와 그 금원의 공여가 대가관계에 있음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 김우중, 최원석이 위 노태우에게 공여한 원심 판시의 각 금원 및 위 전두환이나 노태우가 기업인들로부터 수수한 원심 판시의 각 금원은 모두 대통령의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로서 뇌물에 해당한다(대법원 1997.04.17. 선고 963377 전원합의체 판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시 대기업 총수들로부터 받은 수천억 원의 정치자금에 대하여 모두 수뢰죄를 인정한 판결이다.

대통령은 그 직무권한과 영향력이 국정 전반에 미치기 때문에 이들의 직무 범위를 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은 국정 전반에 관하여 청탁을 받거나 그 권한이나 영향력 행사를 기대한 금품 제공에 노출될 수 있음에 반하여 이들의 음성적 자금수수가 발각되더라도 수수한 뇌물과 직무 사이의 관련성이나 대가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면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 그래서 법원은 이러한 불합리함을 해결하고자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의 경우에는 뇌물과 직무와의 대가관계를 폭넓게 인정하는 소위 포괄적 뇌물을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이 포괄적 뇌물론은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성의 인정 여부를 포괄적으로 인정하여 기업인 등으로부터 아무런 청탁없이 정치자금의 명목으로 받았더라도 뇌물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판례의 흐름으로 볼 때, 대통령이 대기업 경영자들을 만나 재단설립을 위한 출연을 요청한 행위가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 대가성

뇌물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가성이 필요한지 논란이 된다. 대법원판례는 대가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취한다.

 

뇌물죄는 직무집행의 공정과 이에 대한 사회의 신뢰에 기하여 직무행위의 불가매수성을 그 직접의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으므로 뇌물성은 의무위반 행위나 청탁의 유무, 개개의 직무행위와의 대가적 관계, 금품수수 시기와 직무집행 행위의 전후를 가리지 아니한다 할 것이고, 공무원의 직무와 금원의 수수가 전체적으로 대가관계에 있으면 뇌물수수죄는 성립(대법원 2000.01.28. 선고 994022 판결)

 

이와 달리 대가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듯한 판례도 보인다.

 

금품이 직무에 관하여 수수된 것으로 족하고 개개의 직무행위와 대가적 관계에 있을 필요는 없고, 공무원이 그 직무의 대상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금품 기타 이익을 받은 때에는 사회상규에 비추어 볼 때에 의례상의 대가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겨지거나,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있어서 교분상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명백하게 인정할 수 있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무와의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며,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금품을 수수하였다면 비록 사교적 의례의 형식을 빌어 금품을 주고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수수한 금품은 뇌물이 된다(대법원 2008.02.01. 선고 20075190 판결).

 

그러나 이 판례가 뇌물죄에 대가성 요건이 불필요하다고 본 것은 아니다. “의례상의 대가에 불과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외에는 직무와의 관련성이 있고, 그러면 뇌물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국회의원이 그 직무권한의 행사로서의 의정활동과 전체적·포괄적으로 대가관계가 있는 금원을 교부받았다면 그 금원의 수수가 어느 직무행위와 대가관계에 있는 것인지 특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회의원의 직무에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대법원 1997.12.26. 선고 972609 판결)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기업의 재단설립 출연이 대통령의 직무행위와 대가성이 있다고 인정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문제다. 당시 삼성그룹의 합병문제로 국민연금의 찬성이 필요하였다거나 SK그룹이나 CJ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문제가 걸려 있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청탁하면서 그 대가로 재단에 출연한 것이 아닌 이상 대가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른 기업들 역시 기업활동과 대통령의 직무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큰 그룹들이 각자 현안이나 애로사항이 없을 리 없으므로 본질적으로 위 세 그룹과 차이가 없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대가성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편, 대통령이 유례없이 그룹총수들과 독대하면서 출연을 권유하는데 이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대통령의 직무범위가 위와 같이 광범위하고 그 영향력이 막강하므로 대통령의 눈 밖에 나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대가성은 대기업의 출연이 정부가 가할 불이익이 두려워 이를 피하기 위하여 강요당한 면이 더 강한가, 어떤 반대급부를 기대하고 응한 면이 더 강한가에 달려 있는데, 이는 결국 증거의 문제다. 증거를 접할 수 없는 필자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 금품수수 여부

기업들이 출연한 자금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였으니 그 재산의 소유 주체는 두 재단법인이다. 그런데 기업들이 출연한 재단설립자금이 대통령의 수중에 들어간 사실이 밝혀진 것은 없다. 최순실의 경우 그가 실소유자라고 알려진 플레이그라운드’, ‘더블루케이의 용역 등을 통해 재단들의 자금을 빼가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확정적으로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는지는 아직 명확하지는 않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보면, 박대통령은 물론이고 최순실이 재단설립자금 자체를 수수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대통령이 공익을 위하여 재단법인을 설립한다면서 그 운영을 출연한 기업들이나 소관부처인 문체부에 맡기지 않은 점이 문제다. 출연기업들이나 소관부처와 전혀 무관하게 최순실이라는 자연인에게 임원진 구성을 맡김으로써 실제적으로 두 재단법인을 운영할 권한을 주었으니 최순실이 금품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재단법인의 이사회는 유일한 의사결정기관 겸 집행기관이므로 주식회사의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합친 기능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사진을 장악하면 재단법인을 장악하는 것이요, 운영권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재단법인을 실제로 운영할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재단법인의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재단법인의 재산은 감독청(여기서는 문화체육부장관)에 의하여 엄격하게 관리되므로 이사장이든 이사회든 법인 재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고, 이사장이나 이사가 재단법인의 재산을 개인 소유로 삼으면 업무상 횡령죄가 성립한다. 그리고 법인이 해산될 경우에는 잔여재산은 다른 공익법인에 출연하거나 국고로 귀속될 뿐 설립자든 이사든 한 푼도 챙길 수 없다. 다만 최순실은 감독청의 허가 없이는 처분할 수 없는 재단의 기본재산의 비율을 대폭 축소시켜(미르재단은 전경련 주도로 본래 기본재산과 보통재산의 비율이 9:1의 비율로 된 정관을 만들었으나 최순실의 개입으로 2:8의 비율로 변경된다)처음부터 사유화를 목적으로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판례를 보면, 자동차를 받았지만 이전등록을 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자동차의 사실상 소유자로서 자동차에 대한 실질적인 사용 및 처분권한이 있다면 자동차 자체를 뇌물로 취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대법원판례(2006.5.26.선고20061716판결)가 있다. 반면, 공무원이 리스차량을 받았더라도 자동차의 소유명의가 리스회사여서 이를 합법적으로 처분할 수 없고, 리스계약상 리스계약이 기간만료 또는 리스료 연체로 종료되어 리스회사에서 위 승용차의 반환을 구하는 경우 피고인은 이에 응할 수밖에 없는 점에 비추어 그 승용차에 대한 실질적 처분권한이 있다고 할 수 없어 자동차 자체를 뇌물로 수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2006.04.27. 선고 2006735 판결).

 

리스차량도 범죄행위를 통하여 처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자동차 밀수출업자에게 매각), 그렇다고 처분권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재단법인의 재산은 횡령이나 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처분이 불가능하므로 역시 처분권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더욱이 재단법인은 비영리법인이므로 수익사업을 하여 이익을 내더라도 이사장에게든 그 누구에게는 배당할 수도 없다(급여 등 비용 형태로 빼 갈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최순실이 재단법인의 운영권을 장악하였더라도 출연재산 자체가 최순실에게 바로 공여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약 대통령과 최순실이 일단 재단을 설립한 다음 그 재산을 몰래 처분하여 사유화하기로 계획하였다면 출연재산 자체가 뇌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이 있었다고 인정할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재단법인의 운영권 자체가 뇌물이 될 수는 없을까? 뇌물죄에서 뇌물의 내용인 이익이라 함은 금전이나 물품은 물론 기타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요·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족한 일체의 유형·무형의 이익을 포함한다고 본다. 리스승용차를 뇌물로 제공한 위 사건에서 법원은 리스보증금 및 리스료 지급 등과 같은 형태의 금전적인 부담이 전혀 없이 승용차를 사용·수익할 수 있었으므로 이러한 이익이 뇌물이라고 보았다. 판례는 투기적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는 것도 위 이익에 해당되므로 장래 싯가의 앙등이 예상되고 주식을 액면가에 매수한 것도 뇌물에 해당한다고 본다(대법원 1979.10.10. 선고 781793 판결). 일본 판례에는 기생의 기예 공연, 이성간의 정교(情交)도 뇌물로 본 사례가 있다. 재단법인 운영권이 재산적 가치가 있는 권리임은 명백하고, 법인의 재산이 상당할 경우 운영권 역시 상당한 재산적 가치가 있는 이익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운영권이 뇌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제3자뇌물수수죄 성립여부가 문제된다. 대통령이 직무에 관하여 대기업으로부터 재단법인의 운영권 상당의 금품을 제3자인 최순실로 하여금 받도록 하였다면 제3자뇌물죄가 성립한다. 2017.2.2. 서울고법은 정옥근 전 해참총장에게 제3자뇌물수수죄로 징역4년을 선고하였는데, 차기호위함 수주 대가로 STX그룹으로부터 아들 명의의 회사에 후원금 명목으로 77,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공무원이 처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뇌물을 받으면서 이를 제3자에게 주도록 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제3자뇌물죄의 사례는 매우 드물다.

 

최순실이 두 재단법인의 이사나 이사장에 취임하지는 아니하였지만 이사진 구성에 전권을 휘둘렀음은 이미 밝혀졌으므로 두 법인 운영권이라는 이익이 뇌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운영권이 재산적 이익임은 분명하지만 그 가액이 얼마라고 산정하기는 어렵다. 출연된 재산의 가액이 운영권 가액일 수는 없다. 따라서 뇌물액수에 따라 가중 처벌되는 특가법을 적용하기는 어렵고, 형법상 제3자뇌물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는 대통령은 제3자뇌물수수죄에 해당하지만 최순실에 대해서는 공범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어떤 죄도 성립하지 않는다.

 

. 수뢰죄의 공범 성립 여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제3자뇌물죄가 성립할 수 있는데, 대통령과 최순실이 공모하여 재단설립의 형식으로 뇌물을 받은 것이라면 최순실은 수뢰죄 공범이 인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랬을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 그 증거가 있을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만약 최순실이 뇌물을 받은 것이 사회통념상 대통령이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인정된다면 두 사람은 수뢰죄의 공범이 된다. 예컨대, 공무원이 뇌물을 직접 받지 않고 배우자로 하여금 받도록 한 경우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직접 받은 것과 동일하게 인정된다. 특검이 대통령과 최순실이 경제적공동체임을 증명하려고 수사력을 경주하는 이유다. 결국, 특검이 목표로 하는 수뢰죄 공범 여부는 과연 대통령과 최순실이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 나아가 그 증거를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4. 맺으며

 

그룹총수들이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권유받은 재단법인 설립을 위하여 770여억 원대의 자금을 출연하였다. 이 출연행위가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강요받은 면이 더 강한지, 어떤 반대급부를 기대하고 응한 면이 더 강한지에 따라 대가성 여부가 결정되고, 대가성이 인정된다면 뇌물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요청하여 두 재단법인을 설립하도록 하고, 그 운영권을 최순실에게 맡긴 행위는 대법원의 포괄적 뇌물론에 의하면 직무에 관하여”, “대가성 있는이익(재단경영권)을 최순실로 하여금 받도록 한 것이라고 평가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이 경제적공동체를 이룬 것이 아니라면 공범으로 인정되기는 어렵고 제3자뇌물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대통령과 대기업총수들이 뇌물죄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은 출연을 강요하였고, 기업총수는 이에 못 이겨 출연하였다고 주장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공익을 위하여 단지 권유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강요죄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데에는 유용한 반면 뇌물죄가 성립될 가능성은 높아지는 딜레마가 생긴다. 대통령이 공익을 위하여 단순히 권유만 했음에도 대기업들이 수십억 원씩 출연하고도 그 재단 운영권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아니한 것은 뇌물이기 때문이라고 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는 본인의 설명과 같이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 출연을 요청하였고, 최순실의 재단설립 및 운영권 장악에 관여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였다는 점이 인정될 경우 강요죄와 수뢰죄에서 모두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대통령이 비서진을 통하여 기업들의 출연 여부, 재단설립 등을 계속 챙겼다는 수석비서관의 진술 등이 모두 믿을 수 없다고 법원에서 배척되도록 해야 하는 고개를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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